허지웅

생각하기 2008. 6. 4. 08:00
   허지웅, 그를 알게 된 것은 오로지 우연이였다. 한국의 지식인들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김규항과 진중권을 존경하는 선생...'이라는 부근이 발견되 들어가게 된 글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2004년부터 쓰기 시작한 꽤 많은 양의 글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첫번째 보게 된 글의 말미에는 GQ 11월호에 실린 글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었다. GQ의 칼럼리스트 = 허지웅,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학교 도서관에 신청해놓고 정작은 싫어하는 잡지 GQ. 그 잡지를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대한민국에서 이름모를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되어버린다. 한벌에 천만원이 넘는 정장을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혼자 붕어빵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잡지의 칼럼리스트, 그는 분명 최소 백만원이 넘는 정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글이 CQ 같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다시 앞줄의 연행이 시작됐다. 옆에 김작가 형이 끌려갔다. 나도 끌려갔다. 어깨를 잡혀 끌려가는 도중 뒤 쪽에서 누군가 당겨 몸이 허공에 떴다. 다시 땅으로 처박혔다. 몸이 땅에 닿자마자 군화발이 날아들었다. 머리도 잡아당겼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자꾸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왜 때립니까. 어휴 진짜 아파서. 그렇게 당기고 끌려 우체국 앞까지 밀려갔다. 더 이상 날 끌고 갈 의지가 없었던지, 정신을 찾고 보니 도로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옆에 선, 어느 선량해보이는 청년이 내 대신 화를 내주고 있었다. 왜 사람 머리를 잡아당깁니까. 아끼는 겉옷이 찢어져 걸레가 됐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검지 손톱 절반이 씹혀 너덜거리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굴에 땀을 닦다가 뺨에 온통 피가 묻었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바람에 알았다. 겸연쩍었다. 나는 람보가 아니다. 그래도 꽁지머리를 지탱하던 고무줄이 사라진 걸 알았을 때는 화가 많이 났다. 난 간지남인데. 어디 거울 없나. 처량해서 처연하다.

허지웅의 블로그, '25일 새벽 청계 광장' 중에서

   그는 글을 잘 썼다. 다만 블로그의 분위기처럼 어둡고 쓸쓸했다. '고시원에서부터 온 편지'과 '20대가 사라졌다' 같은 몇개의 글을 더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고, 고시원에 살다, 반지하빌라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란 알았다. GQ뿐만 아니라, 프리미어 같은 잡지에 기고를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의 의심도 풀렸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순간 행복이 사라지듯, 나의 기쁨에도 문제가 터졌다. 내 문제는 그의 글을 읽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 속이 매스꺼워 진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어두움 때문인가? 어쨌든 원인을 모르는 어지러움과 구역질 때문에 원하던 대로 마음껏 읽을 수는 없었다.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갈거라고 말하는 허지웅에게서 나는 30대가 되면 되고 싶은 나의 미래상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 겪는 그의 고난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만족스럽지 삶에 대한 두려움에 헛구역질이 났었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는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그건 내가 그의 글을 당당히 읽을지 아니면 부끄럽게 외면할지에 대한 선택의 결론일 것이다.


ps. 가자, 그의 말대로 진짜 세계에 살고 있는 일반 시민이 되기 위하여 (0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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