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철 KAIST 이사 부고

생각하기 2011. 3. 8. 13:30
2011년 3월 8일(화) 15:24 노환으로 별세(86세)
1. 빈 소 :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
(주 소 :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
ㅇ 교내 분향소 : KAIST 스포츠컴플렉스 1층 주경기장
2. 발 인 : 2011년 3월 10일(목), (07시 30분 예정)
3. 장 지 : 충남 천안 선산 (세부장소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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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에는 좋은 일이 있고, 잘된 일이 있다.
모든 좋은 일이 잘된 일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게 세상 일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된 일이 되는 것 모두가 세상 일이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관점에 달려있다.
FTA 든, 파병이든, 4대강 사업이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일이 잘못되도 좋은 일이라 생각할 것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해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칭찬 받기 위해서는 다수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뿐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과정을 볼 때는 일이 좋건 나쁜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정성까지 보기 때문이다.

KAIST에 578억을 기부하고 정작 본인은 작은 기숙사 방에서 혼자 사셨던 류근철 박사님.
스포츠 컴플랙스를 건설해 학생들과 직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킨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서남표 총장님과 힘을 합쳐 학내에서 추진하고 개혁에 관해서는 크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안에 대한 나의 의견이 어떤든 상관없이 류박사님의 진정성에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진정성이 보인다면 그를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나의 친구 혹은 지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류근철 박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진정으로 학교를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을 말로, 몸을, 행동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표현하셨던 분이셨다.
위인전에서 튀어나온 세종대왕 같은 분이라고나 할까.

류근철 박사님의 평생 소원대로, KAIST 출신 중에 노벨상을 받는 이가 나온다면 꼭 그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란다.
578억을 기부하면서 KAIST생들과 한 가족이 되서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그는 KAIST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과 하나로 이어진 우리의 가족이자, KAIST의 정신적 가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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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from earth

생각하기 2010. 10. 5. 18:30

이 영화의 핵심은 종교가 갖는 증명 불가능성을 교묘하게 비꼬는 것입니다.
러셀의 찻주전자와 같이 자신 스스로를 예수라고 불린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대화를 통해 여러 논증을 거친것처럼 이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믿고는 종교가 그렇듯이 '믿음'과 '믿지않음', 자기 의지에 따른 두가지 선택만 있을 뿐이죠.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종교는 믿음입니다.
신의 존재는 결코 증명될 수 없기에 믿음으로만 종교가 유지될 수 있을 뿐이죠.
그것도 타인의 믿음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믿음으로 말입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불교, 천주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를 더 싫어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문구로 각인된 개신교의 전도활동은 기독교인들을 불편하게 만든 영화 속 남자의 행동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영화 속 남자는 증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말만 하고 있지만,
그들은 증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잣대로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니까요.

신의 존재가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패러독스라면,
자신의 믿음은 인정하면서 타인의 믿음은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태도는 영원히 풀 수 없는 패러독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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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

생각하기 2010. 8. 28. 00:30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봄이나 가을이었을거야.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낮잠이 올 정도로 선선한 날씨였으니.

그 때 나는 잔디밭 위를 걸어다니고 있었어.
산들산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잔디밭 위에 그냥 누워버리고 싶더라고 어렸을 때처럼.
근데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거야.
잔디밭에 함부러 누웠다간 쥐똥 때문에 괴상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이 떠올랐지.
난 여지껏 입원 한번 해본적 없고 버스에 탈 때도 안전벨트를 맬 정도로 안전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이거든.
당연히 잔디밭에 눕고 싶었지만 눕지 못하고 그냥 누워 있는 상상을 하며 서 있었어.
그렇게 한참을 잔디밭 위에 서서 있었는데 문뜩 한쪽에 난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정말 오랜만에 본 강아지풀이었어.
어렸을 때는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말이지.
만지면 강아지 꼬리처럼 부드럽고 친구 등뒤로 몰래 다가가서 간지럼 피우며 놀기에 딱 좋았지.

"냠냠"
그렇게 강아지풀을 손에 들고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놀다보니 어느 순간 배가 고파진거야.
그래서 먹었어.
어렸을 때 개구리 한마리, 메뚜기 한마리도 안 먹어봤지만 이건 한번 먹어보고 싶더라고.
나름 이것도 풀이니 생식이고 털 끝에 검은깨처럼 달린게 '난 웰빙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더라.
풀에서 난거라 위험할지 모르니 물에 씻어서 먹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먹으면 풀이 풀 죽을까봐 그냥 날로 먹었지.

일단 입 속에서의 느낌이 안좋았어.
검은깨에 눈이 팔려서 정작 중요한 강아지풀에 달린 털들을 잊고 있었던 거야.
입속에서 돌아다니는 털들 때문에 머리 깍다가 실수로 머리카락을 한뭉큼 먹은 듯한 느낌이 나더라고.
물론 맛도 별로였고.
만약 강아지풀이 맛있었다면 편의점에서 옥수수 수염차 대신 강아지풀차를 사 먹을 수 있었겠지?

아무튼 꽃냄새와 선선한 바람에 마냥 신난 강아지처럼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는데 강아지풀 하나 먹고는 풀이 죽어버렸지.
이것 저것 풀을 잘 뜯어먹는 강아지라도 내가 먹었던 강아지풀을 먹었으면 분명 맛이 없다고 했을 거야.
그리곤 분명 맛 없는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 마냥 풀이 죽어있었겠지.

그 날 이후로 힘들 때나 피로회복(피로가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의 회복) 될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더라고.
'맛 없는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 마냥 풀이 죽어있다.'
뭔지 모르게 재미있는 문장인 것 같아.
지금은 풀이 죽어있지만 다른 맛있는 풀들을 먹으면 금새 힘이 솓아날 거 같은 느낌도 들고.
풀이 죽어 있을 땐 머리 속으로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를 한번 상상해봐.
그러다가 풀 죽은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스스로 웃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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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단평

생각하기 2010. 8. 4. 13:30
인셉션 보고는 아무것도 인셉션 안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인셉션 된게 하나 있었음. 인셉션이 명작이라고 여기저기서 말하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되서 왜 명작인지 여기저기 계속 찾아보고 있음. 기존 영화들과 어떤 면에서 진일보한거지? (메가박스 좌석이 불편해서 계속 영화에서 '킥' 당한 점도 상당히 컸음).

영화는 개인에 대한 완벽한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비슷한 장소에서 앉은 사람들이 커다란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를 똑같이 본다. 모든 상황은 통제되어 있고 변인은 단 하나, 영화를 보는 개인뿐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정신분석학을,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불교철학까지 생각해낸다. 개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실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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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악한 것

생각하기 2010. 7. 28. 13:30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손정의 회장님의 강연을 보면서 큰 인상을 받은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손정의가  미래의 인공지능 로봇을 보는 관점이었다. "로봇이 인공지능을 갖고 진화하다보면 분명 사람처럼 착해질 것이다. 그러기에 걱정 안해도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와 같은 SF 영화에서는 항상 인간을 죽이려하는 로봇과 싸우는 모습만 보다가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고보면 로봇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로봇을 본뜬 우리 자신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악하니 분명 로봇도 인간처럼 악할 것이다. 인륜 중 가장 큰 인륜은 살인이다. 그러나 자연을 보면 같은 종끼리 죽이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동물 보고 악하다 말하진 않는다. 그들은 선하고 악한 것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선한 것일까. 아니면 선한 것이 무엇 인지 알기에 악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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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생각하기 2010. 5. 13. 22:00
천사와 악마를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종교인 중에 몇몇을 있을듯해서 '거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사와 악마를 이야기 할 때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생성을 고민, 고민 생각해보면 머리 속에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상상이 천사를 만들고,
나의 또 다른 상상이 악마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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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생각하기 2010. 5. 13. 10:30
나의 말은 대화이고,
지인의 말은 소식이고,
타인의 말은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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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 언니네 이발관

생각하기 2010. 4. 23. 03:00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관심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내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겐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이곳에서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 보았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
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
그동안 길따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채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게

나에게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언제였나 너는 영원히 꿈속으로 떠나버렸지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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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론

생각하기 2010. 4. 5. 07:59

우리 할머니는 걱정이 많으시다.
부모님이 퇴근을 조금만 늦게 해도 혹시 교통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 하시고,
손자, 손녀들 중 누구라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몇날 몇일 교회로 기도를 하러 나가신다.
할머니의 걱정은 끊임없이 이어져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다.

혹시나 할머니가 걱정을 하실까봐 심각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들은 사전에 말씀하시지 않는다.
일의 결과가 잘 나와서 잘 풀렸을 경우 그 때 그 일을 알리시고,
만약 일이 잘 안되었을 경우는 혹시 걱정을 하시지 않을까해서 할머니에게 일 자체를 알리지 않으신다.
나는 이게 단지 걱정이 많은 할머니에게만 해당되는 일인줄 알았다.
그러나 예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혹시 공부에 방해될까봐 미국에서 유학중인 셋째 이모에게 알리지 않은 일,
그리고 걱정할까봐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것을 한달 가까이 군대에 있는 동생에게 알리지 않을 일 등을 보건데,
우리 부모님은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분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걱정이 많은 할머니,
그런 영향 때문에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부모님,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부모님을 둔 나는 어떠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할머니처럼 걱정이 많은 편이다.

종교가 없어서 할머니처럼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걱정이 하나 생기면,
금새 없어지질 않고 내 몸에 찰삭 붙어서 내가 잊어버릴 때까지 나를 계속 괴롭힌다.
사실 대부분의 걱정이 별일 아니거나 큰일이어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다. (아마 본능이겠지)

이런 나를 보면서,
걱정이 많은 부모를 두게 될 나의 자식들은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소심을 예상을 해본다.

혹시 걱정할까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알리지 않을테니 그 전에 눈치 빠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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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

생각하기 2010. 2. 18. 23:33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이 모든 가능성들이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난다.

인생은 파도라는데
파도를 타고 있는 건지
쓰나미를 타고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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