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 날아간 우리들의 꿈

사는 이야기 2009. 5. 23. 22:00

내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애"라는 소리를 듣는 대통령이 아닌,
어린이들이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처럼 자기 이익이 아닌 나라를 위하고 국민들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꿈은 나만 꾸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TV 속에만 즐거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꿈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꿈의 실현을 보여준 예가 바로 오늘 서거하신 전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좋냐는 앵커의 질문에 한 흑인이 이런 대답을 했다.
"이제는 흑인인 내 아이들에게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흑인이 생각하는 오바마와 같은 존재였다.
내가 강남에 살지 않고 부자도 아니지만 열심히 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비록 내가 대통령은 아니지만, 미래의 내가 혹은 미래의 내 아들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그러한 꿈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쿠테타로 정권을 얻고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사람들은 몇천억원의 비자금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가운데,
평범한 국민들의 상징이었던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아들이 대통령이 되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있는 기득권 세력들에게 공격을 받아 자살하지 않을 까 노심초사 해야 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은 좋아하지만 그가 대통령이었던 참여정부 5년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김대중 정권의 5년이 IMF 극복의 기간이었다면, 노무현의 5년은 양적으로 회복한 경제를 질적으로 회복하는 기간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이다. (20대이다보니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그가 역대 대통령 중, 아니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의 모든 정치인 중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고 비록 정책적인 문제로 피해를 주지만 그래도 피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야당에게 비판을 받고 공약을 내세운 정책을 실천 안한다고 자신의 지지자에게까지 비판을 받았지만,
지지자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정당 소속의 정치인이 아닌, 국민 모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가장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강부자만 좋아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어찌보면 전 노무현 대통령과 전 우리학교는 몹시 닮았다.
노무현은 5년전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고 우리는 새로운 건물을 완공하고 제대로된 모습을 갖췄었다.
그리고 서로 한창 순항을 하던 2005년 당시 전 노무현 대통령은 전 우리학교를 방문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고 전 학교도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캠퍼스에는 이 둘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물이 남아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학교 방문 기념 비석.

마음은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봉화마을과 덕수궁 앞에 있는 분향소에 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거길 갈순 없었다.
대신,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그 기념 비석 앞에 소국 한 다발을 놓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다.
하늘에서는 늘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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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U 마지막날.....

사는 이야기 2009. 3. 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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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립오페라단원의 글

생각하기 2009. 3. 8. 11:11

오늘 저는 너무 혹독한 세상을 경험하였습니다.
요즘 저는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결코 내가 겪어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성장하기위한 성장통을 겪는 거라고.. 결국은 잘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 마음이 아프고 서글펐습니다..
저희는 3주전 국립오페라단으로 부터 일방적인 전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할 줄 아는것 이라고는 노래뿐인 저희들이었고...
노래만. 예술만 아는 저희는 돈도, 힘도 없어 그냥 길바닥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간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응원을 얻기위해 밖으로 나가 시민들에게 서명도 받고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 글이 적힌 전단지도 나눠드리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첫 직장이었는데...
13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부해서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를.. 무대에 설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고 감사해서 보험도 없이 70만원밖에 안되는 기본금을 받으면서도 좋다고 열심히 휴일도 없이 마냥 즐겁게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지금.. 새로 부임한 이소영 단장은 우리 오페라합창단 전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해버렸고 어찌 할줄 몰라 마냥 발만 동동 구르던 저희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 할 수 없었기에... 화려한 직업이라는 껍데기 속에 스스로 감춰두기 급급했기에, 밖으로 나가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망가지면서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인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밑바닥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까봐...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너무 속물 같지만 그게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계의 이런 열악한 현실이 세상 밖으로 꺼내져야 했기에...
후배들에게 같은 고통을 안겨 줄 수 없었기에 제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그리곤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저희들에게 세상이 마냥 두 손 벌리고 반겨주지만은 않았습니다..
투쟁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싫어하시는 어르신들...
저도 그 심정 이해는 합니다.. 저도 이렇게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투쟁하시는 분들의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너무 바쁜 요즘 남의 일에 관심 갖기에는 여유가 없는 이들...
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나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던가하는 반성을 해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정말 본인 일 마냥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기에...


이소영단장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 미루기...
서로 상대편이 승낙하면 자기들도 저희의 요구를 승낙하겠다는...
그러나 누구도 자기들이 먼저 해주지는 않는...
책임회피.. 책임전가... 미루기... 티비 속에서만 나오는 것 인줄 알았어요...
눈앞에서... 내가 티비 속에서 보던 것을 당하고...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1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어요..
어느 누구도 해답을 주지 않았고 책임을 미루기만 할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러다 오늘...
오늘 예술의 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희망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경제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제 어제가 되나요??
갑작스레 그 연주에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는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저희의 억울한 사정을 대통령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에게 꼭 저희의 사정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국립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하는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음을...
혹시라도 이미 윗분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고, 당신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라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음악계 모든 사람들이 오페라합창단이 없어져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데, 왜 그러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 마음 하나로 예술의 전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펼쳐진 광경은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말았습니다..
무리지어 여기저기 열 맞춰 대기하고 있는 전경들...
사복을 입은 젊은 남여 의경들...
경호원들...
사복 경찰들...
그리좁지만은 않은 예술의전당 음악분수대 앞 광장을 거의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오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저희는 조용히 저희의 마음이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서있었습니다..


그분들도 그분들이 하실 일을 하시는 거니까...
저희도 최대한 그분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나름의 1인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저 무대인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하는 서글픈 마음을 위로하며 광장에 흘러나오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복 의경들이 저희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저희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을 에워 쌓습니다..
저는..
피켓을 들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구호도.. 사람들을 향해 항소를 하거나 말을하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무대를 바라보며 마냥 서글퍼만 하며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저를5~6명되는 사복 여자의경들이 둘러싸더군요...
그 뒤에 한 줄 더...
남자들에겐 남자의경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5~6명 정도 되는 의경들이 빙 둘러서 원으로 감싸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의경들이 한 줄로 서서 그 원을 가리고...
또 그 뒤에는 전경들이 길에 한 줄로 대통령이 들어갈 길을 인간 바리케이드로 만들어서 가리고...
그 중간에는 경호실 사람들이랑 사복경찰들이 여기저기...
구석구석에는 열 맞춘 전경들이 대기...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습니다..
결국 우리가 불법을 행한 것도 아니고 시끄럽게 떠들거나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1인 시위하고 있는 건데 이게 뭐하는 거냐며 오빠들과 경호부, 경찰들이랑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내가...
내가 마치 범법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난 그냥 우리 사정을 그분께 알리고 싶었던 것 뿐 인데...
힘이 없어서...
국민의 소리에, 음악가들의 소리를 문광부에서 들어주지 않으니까 더 높은 분이 말해주면 좀 들어줄까 싶어서.. 그 마음하나로 나간자리였는데...
젊은 장정 6명이 덩치가 크지도 않은 우리 오빠 한명을 완전 숨도 못 쉬게 꽉 감싸고 몸으로 미는 것을 봤습니다...
그냥 피켓만 들고 있겠다고...
대통령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그렇데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무대에서 피켓하나 들고 서있던 우리를..
누군가 지휘하는 사람이 "야 날개 만들어!!" 라고 말하자 의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게 에워 싸버리는...
우리를 호암 마마보다 더 무섭고 더럽고 추악한 무언가를 대하는 듯한 그 태도에 화가 난 오빠들 중 한 사람이 "진짜 더러워서.. 뭐 이러냐.. 우리나라 진짜 멋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경호실분인지 경찰청분이신지 모르겠지만 좀 높아 보이는 분께서...
"그럼 나라를 떠나면 되겠네.. 나라를 떠나!!" 라고 하시더군요...
참...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께서 국민에게 하실 말인거져..
나라가 맘에 안 들면 떠나버려라!!!
휴...


제가 그리 많은 나라를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지낼 때 단 한순간도 우리나라를 부끄러워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서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밝혔고... 진심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욕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그래도 나라가 잘살고 강해야 우리도 어딜 가든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거야.. 라고 하면서 나라사랑을 강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랏님들은 국민을 그렇게 생각 안 하고 계셨던가 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
비폭력 시위를 하고있는 우리를...
공권력을 남용하여 사람 숨막히고 자존심 상할 정도로 인간 올무를 만들어 휘감은 것도 모자라 반말 찍찍해대며.....
대통령이 우리가 1인 시위하고 있음을 절대 볼 수 없도록 인간 바리케이드를 몇 겹씩 만들어 에워싸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나라를 내가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무대를 코앞에 두고 이런 수모를 겪고 있어야 함이...
너무 서러웠습니다..
너무 서글펐습니다...
그냥 다 그만두고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도안돼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있었습니다...
진짜 우리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오빠들중 한명은 경호하는 사람의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 맞기도했습니다...
밤이라 형태만 간신히 찍혔지만 그래도 이런 부당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이렇게 하는것이 그들의 일이기에 이해하려고 했지만 납득이 도저히 갈수 없게 너무 과잉진압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것을 본 내 앞을 지키고있던 사복 여자 의경...
20살 갖넘어보이는 앞길이 창창한 아이였습니다...
제 얼굴에 자신의 카메라를 갖다 대더니 제 사진을 찍더군요...
너무 어의가없어서 말도 안나왔습니다..
제 사진을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무 얌전히 가만히 앉아서 시위한다고 있는 사람을 처음 봐서 였을까요??
지우라고 했습니다...
도망가더군요...


좀 높아보이는 사람한테 저사람불러서 보는 앞에서 사진 지우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분 왈.."사진 찍혀서 피해본거있어?? 피해본거있냐고??"
제가 기분나빠요 그러니까 지우라고 하세요!라고 했더니"그러니까 사진 찍혀서 피해본거 있냐고??"라고 말하시더군요....
그앞에 계시는 다른 분께 아저씨같은면 얼굴에 대고 허락도 없이 사진 찍으면 기분 좋으세요?? 그냥 냅두실꺼에요??라고 하니 묵묵부답이시더군요...
그여자아이가 제가 찍은 동영상땜 본인도 찍은거라기에 동영상 지워버리고 그럼 사진도 지우라니 의경들과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근처에도 못가게 하더군요...
지우고 확인시키라고 했더니 본인 개인사진들이 있기때문에 확인시켜줄수는 없다더군요.. 나도 개인사진 가득했는데 나랏님들은 국민개인사진 확인 가능하고 우리는 확인 불가능이라는거 오늘 배웠습니다...
음악당 지붕위에서도 나랏님들께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습니다..
뭣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수많은 나랏님들의 인간 바리게이트 덕분에 저희는 대통령의 머리털 하나도 보지못했습니다..
그동안 문광부 주체로, 국가행사로 수많은 연주를 했던 우린데...
그런 우리를 이제는 범법자취급하네요...
수고했다고 감사하다고 좋은연주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그 입들이, 이제는 나라가 맘에안들면 떠나버리라고 하고 조용히 입다물고 있으라네요...
높은곳에 계시는 나랏님중 한분이 그러셨다네요..
합창단이 떼쓴다고 상임화시켜주냐고.. 그냥 밀고 나가라고...
합창단 잘 처리하라고...
ㅜ.ㅜ


우리 떼쓰는거 아닌데....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건데...
우리가 처리되어야하는 문젯거리라니....
상임화시키겠다는 약속으로 7년이란 시간 이어져온건데...
7년간 축적되어온 전문합창단으로서의 능력을 완전 짓밟아 버리겠다니...
양질의 오페라를 위해 전문오페라합창단 쫓아내고 대학생들 데려다가 합창시키고...
신입단원뽑을때 조차 기본적으로 음대 4년 졸업 이상이 조건이었으면서....
자기들이 안바꿔놓은 규정때문에 우리를 없애겠다고 우겨대면서 재학생을 데려다 쓰는건...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건 좋다..
그렇다고 기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겠단말인가...
그들이 졸업하면 어디로 갈것인가??
오늘의 실망과 상처는 이런것들 조차도 내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한다....
뉴스에서만보던 일들이 하루하루 내게 일어나고있다...
누구에게 호소해야하는것일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않는다...
약자의 소리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다는거...
이제야 알았다...
그간 내가 배운건, 믿고있던것들은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나의 믿음은...
나라에 대한 신의는.. 사랑은...
투신하는 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같다...
분명 지금 이소영단장이 합창단을 없애는것이 잘못이라고 나랏님들도 인정한단다....
근데 윗선..그게 도대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빨리 합창단 해결하란다... 밀고 나가란다...
이번 일들을 통해서 나는 성장하는 걸까??
이대로 상처만 받고 불신만 쌓이게 되는것은 아닐까??
너무 서글프다...
세계 최고가 되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꾸던 내가 미워진다...
뭘위해 그런 꿈을 꾸었던가...
나라는 국민을 원하지 않고 있는거 같은데....
지금 이순간에도 아직 한켠에 그래도 희망을 담고, 진짜 그렇진않을꺼야라고 위로하고 있는 내가 미워지려고한다....


너무 서글프다..
노래하고 싶을 뿐인데..
무대로 돌아가고 싶을 뿐인데...
억지로, 강제로, 부당하게 빼앗아간 우리의 자리를 돌려달라는건데...
무대에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싶은데...
더 좋은것으로 더 열정 담긴걸로 나눠주고싶은데...
내 열정은 이렇게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데...
서글프다...
현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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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에,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단순히 내 이기심 때문이었다.
학교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렇기에 다시는 그런 무관심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 사회를 자각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지금은 1년의 몇십억원의 CF를 찍는다는 김연아도 불과 몇년전에는 스폰서 하나 없어서 연습하나 제대로 못했었다.
바로 당신의 옆에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람이 언젠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작은 관심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큰 도움이다.
병에 걸렸을 때 가장 서러운게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을 때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부딛친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들의 무관심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겠지만,
그에게 같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찬가지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헌신적인 봉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으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마이더스의 손이 없고 불로장생 할 수 있는 불로초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 자신이 언젠가는 사회적 약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할 우리가 스스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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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사는 이야기 2009. 3. 2. 21:14

'피땀을 모아, 이 땅을 고아'로 살아오신 선조들 덕분에 새로운 시작은 항상 3월 2일이었다.
새 학년이 되는 것부터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듣게되는 입학식까지,
봄의 새로움은 사실 3월 2일이라는 이 날, 하나로 대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3월 2일은 조금 많이 달랐다.
여느 때나 다름없는 또 다른 새로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5년 간의 기억을 먼지 속에, 검은 장막 속에 덮어버리는 날이기도 했다.
땅을 뚤고 나오는 잔인한 변화여.

오늘따라 태극기가 눈에 띈다.
태극기따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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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생각하기 2008. 12. 27. 14:22
   지난 2년간 우리 학교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 손외의 영역이었다. 그리하여 지풀라기 잡는 심정으로 우리의 마지막 시도는 국민들의 대대적인 관심을 끄는 일이었다.
   몇일 안되는 기간동안 밤새워 홍보동영상을 만들고 그걸 각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다 날랐다. 블로그가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는다는 글을 포스팅했다. 잠깐이나마 학교 이름을 포탈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2월의 피와 땀은 별다른 결실없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관심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모르는 학교에 관심을 쏟기를 거부했다. 결국, 2008년 12월 26일 현재, 선장도 없고 돗대도 없는 배가 행운의 여신을 따라 동토가 아닌 따뜻한 남도에 도착하기를 기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도움을 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차례가 되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도 2년전 그렇게 원망하던 관심없고 자기일 하기 바쁜 한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무에 열린 과실을 먹으면서도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버린 사람들. 나무가 어떻게 되던 열매는 계속 열려있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 20년전 우리가 나무를 처음 심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나무는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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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사는 이야기 2008. 10. 20. 13:30

학교 기숙사 앞에는 우리가 세렝게티라고 부르는 초원이 있다.
내가 입학할 5년전에는 건물이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명 하나 없이 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생물시간에 배운 식물군의 변화 이야기처럼 이끼들에서 풀들로, 풀에서 다년초 풀들로 그리고 지금은 나무까지 있다.

이렇게 새로운 식물생태계가 만들어지자 자연스럽게 동물들도 하나둘씩 삶의 터전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두 날개를 가지고 있어 가장 접근성이 좋은 새들이 먼저 이곳을 쉼터로 삼더니,
달팽이, 지렁이, 개구리, 심지어는 너구리 가족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본래의 계획대로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자리였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지금처럼 방치되어버린 세렝게티.
동물원에 찾아가야만 동물들을 볼 수 있는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이렇게 쉽게 동물들을 볼 수 있게 해준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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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채용설명회

사는 이야기 2008. 3. 18. 23:28
오늘 학교 강당에서 NHN(Next Human Network)의 채용설명회가 있었다.
채용설명회라는 낚시 태그를 썼지만, 사실 설명회에 대한 내용보다는 거기서 받은 선물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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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설명회를 들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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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여러가지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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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이어리. 표지는 네이버를 상징하는 초록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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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검색창을 닮은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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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에서 오래 게임하라고 제공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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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쿠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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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모바일 한게임이 생각나라고 핸드폰 고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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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음식 진공 포장처럼 되어 있어 저녁을 못 먹은 나에게 10초동안 먹을걸로 보였던, 네이버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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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위에 깔아놓으니, 검색창하고 헷갈린다 -ㅁ-



기사에서 보던 대로, 전국을 순회하면 채용설명회를 할 정도로 올해 NHN 예상 채용 인원은 많은 듯 하다.
듣기로는 거의 현재 인원정도의 신규인원을 뽑을 예정이라고 하던데, 사실 기록적인 영업이익률(42%)를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다.
현재 국내, 포털에서는 확고한 위치(50%이상 점유 중)를 차지했고 이제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선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한게임은 일본, 중국, 미국에 예전부터 진출하여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NHN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 즉 검색서비스 + 포털서비스는 외국 시장에 거의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가 한국 포탈을 점령했던 노가다식 정보생성으로는 외국시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그 때문에 한국의 구글이라는 모토로 출발했던 첫눈을 NHN에서 인수하게 된 것도 검색을 좀 더 잘해보자는 뜻에서 일 것이다.
사실, 야후를 빼고 거의 사라진 검색엔진 1세대들을 생각해보면, NHN도 가만히 안주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디 해외 시장에서도 NHN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처럼 크게 성공하길 바라는 바이다.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NHN에 갈 수 있다면, SmartEditor에 포토 업로드 기능에서 보정 기능을 크게 개발하거나 새로운 PictureEditor를 만드는 것인데, 이거 NHN 전문연구요원도 없으니 석사 2년 + 전문연구요원 3년 후를 생각하니 가장 빠르게 입사한들 2013년이다. 그 때되면 정말이지, 피라미드의 말단도 말단이 없을 것이다. NHN이여 안녕~~~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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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두려움

사는 이야기 2008. 2. 15. 03:06
HCI 학회가 열린 휘닉스파크(사실 주 목적은 스키)에서 원주로, 원주에서 대전가는 버스를 대전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학교로 돌아왔다.
전날 학회에 온 형들과 술을 새벽까지(아침 6시 10분) 마시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학교까지 가는 버스내내 계속 잠을 잤고,  오전에 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못갔다.

어쨌든, 힘겹게 달려 지난 4년간 있었던 학교와 조우했다.
12월 31일, 짐을 싸서 DML로 떠났을 때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이니, 2008년 들어서 처음 본 학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무척이나 낫설었다.
처음 DML에 왔을 때와 같은 두려움이, 4년동안 지냈던 학교에서 느껴졌다.
우숩다.
집 같던 학교에서 떠나는 나에게 DML은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DML을 떠나 학교로 돌아오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세계관이 되어버리는 휘발성 강한 내 메모리답게,
카프카와 같이 세상이 모든 곳이 낫설고 두려운 방랑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추억이라고 불리는 기억을 밟고 살고 있다.
별들만이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한결 같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지난 4년동안 같이 공부한 친구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내일은 DML에서 6주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발표가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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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무렵

포토폴리오 2007. 12. 1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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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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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

포토폴리오 2007. 10. 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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