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조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사는 이야기 2011. 3. 31. 00:45
시작과 끝.
항상 그렇듯이 중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렇게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더 이상 조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죽음.
죽은 자를 탓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물론 나도 이기적이다.
저 이야기를 가기 전부터 들었지만, 그냥 갔다.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이기적인 세상,
그러니 우리가 지금 이지경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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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철 KAIST 이사 부고

생각하기 2011. 3. 8. 13:30
2011년 3월 8일(화) 15:24 노환으로 별세(86세)
1. 빈 소 :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
(주 소 :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
ㅇ 교내 분향소 : KAIST 스포츠컴플렉스 1층 주경기장
2. 발 인 : 2011년 3월 10일(목), (07시 30분 예정)
3. 장 지 : 충남 천안 선산 (세부장소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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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에는 좋은 일이 있고, 잘된 일이 있다.
모든 좋은 일이 잘된 일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게 세상 일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된 일이 되는 것 모두가 세상 일이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관점에 달려있다.
FTA 든, 파병이든, 4대강 사업이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일이 잘못되도 좋은 일이라 생각할 것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해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칭찬 받기 위해서는 다수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뿐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과정을 볼 때는 일이 좋건 나쁜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정성까지 보기 때문이다.

KAIST에 578억을 기부하고 정작 본인은 작은 기숙사 방에서 혼자 사셨던 류근철 박사님.
스포츠 컴플랙스를 건설해 학생들과 직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킨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서남표 총장님과 힘을 합쳐 학내에서 추진하고 개혁에 관해서는 크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안에 대한 나의 의견이 어떤든 상관없이 류박사님의 진정성에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진정성이 보인다면 그를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나의 친구 혹은 지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류근철 박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진정으로 학교를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을 말로, 몸을, 행동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표현하셨던 분이셨다.
위인전에서 튀어나온 세종대왕 같은 분이라고나 할까.

류근철 박사님의 평생 소원대로, KAIST 출신 중에 노벨상을 받는 이가 나온다면 꼭 그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란다.
578억을 기부하면서 KAIST생들과 한 가족이 되서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그는 KAIST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과 하나로 이어진 우리의 가족이자, KAIST의 정신적 가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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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 1세대

사는 이야기 2011. 2. 19. 16:30
세상 모든 물건들이 그렇듯이, 모든 것들은 그것의 모태가 되는

세상에 완벽하다 여기는게 많이 있지만 완벽함은 처음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온수도 나오고 앉지 않으면 작동을 하지 않는 비데를 보면서 비데가 이렇게 좋구나 라고 여길때가 많지만,
비데도 맨 처음에 나왔을 때는 문제 많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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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으로부터의 사색

뒤적뒤적 2011. 1. 26. 17:00

10시 30분 수업에 가기 위해 내가 일어나는 시각은 8시 40분이다. 9시 10분에 화암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9시 30분에 문지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없고, 그렇게 되면 10시 30분 수업을 위해 10시 30분에 문지동에서 타는 버스를 탈 수 밖에 없다. 9시 40분쯤에 학교에 도착해서 50분 정도는 수업을 기다리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기웃 거린다. 스포츠 컴플렉스가 건설되는 모습도 보고, 내가 영영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신축 기숙사의 모습도 본다. 그러나 이러한 구경꾼 놀이도 하루 이틀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한적한 실내에 들어가 하염없이 시간을 때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올해 1월에 대대적으로 개편된 대전시내버스노선의 만족도가 83.3%나 된다는 설명을 본 것이다. 버스가 개편된 이후로 10분에 한대씩 오던 버스들이 20분에 한대씩으로 배차간격이 길어졌다. 당연히 유일하게 화암기숙사로 지나가는 시내버스인 918번도 20분에 한대씩 온다.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 한명도 안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서 봤으면 절대 만족도 83.3%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게 된다. 아마 높은 정당 지지율처럼, 시내버스도 잘 안타는 분들이 버스 색깔이 예쁘게 바뀌었다고 저렇게 말한게 분명하다.


아파트와 식당들이 있는 전민동과는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이곳으로 배달 오는 음식점은 극히 드물다. 배달을 전문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치킨집이나 피자집들은 바람을 헤치고 이곳까지 찾아오지만, 정작 점심이나 저녁으로 먹을 만한 밥집은 한, 두집 빼고는 오려고 하질 않는다. 배달 해주는 곳 중 하나라고 해도 3명 이하로 시킬 때는 무척이나 눈치 보이고.


산골에 있는 기숙사답게 기숙사에는 해가 잘 들어오질 않는다. 봄이나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은데 겨울이 되니, 동쪽에 해가 떠있는 아침을 빼고는 해를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을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는 북유럽의 겨울이 이와 같지 않을까?


이곳 기숙사도 좋은 점은 있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유럽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기숙사 답지 않게 건물들이 예쁘다. (실내는 한국식으로 난방을 깔아주었으면 좋았으려만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시끄럽지도 않고 한적해서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기에 좋다.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의 주말이었다. 주말이라 평소보다 일찍 방에 들어온 나는 책상에 앉아 한가롭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목이 말라 기숙사 중앙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 좀 마시려고 방문을 나섰다. “찰칵” 그리고 “철컥“.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커다란 실수를 깨닫고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방문을 잠기고 방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한 손엔 도끼대신 물병을 들고 원시인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던 나는 굳게 닫친 방문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두 발은 멈춰 있었지만, 머리 속으로는 여러 가지 상상들이 쏟아졌다. ”룸메가 돌아오려면 최소 4~5시간은 기다려야 되는데 이렇게 그냥 복도에 서있어야 하나.” ”이 복장으로 사감실까지 뛰어가서 방문을 열수 있는 키를 받아올까?“ ”아니야 그러다 사감선생님이 없으면 카트키도 없는 나는 눈 오는 이 겨울밤에 밖에서 꼼짝없이 벌벌 떨 수밖에 없어....“ ”복도 빨래대에 있는 옷들은 잠시 빌려 입고 사감실까지 갔다 올까...” 그렇게 어찌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사이, 아주 우연히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기숙사 복도에서 사감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내 옆방 학생이 방문이 잠겨서 사감선생님을 불렀고 그 때문에 사감선생님이 마스터키를 들고는 기숙사로 온 것 이었다. 덕분에 이 험한 화암기숙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렇게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화암기숙사를 살면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쪽 식당 밥이 싸고 맛있다는 것이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이 적어 더 많은 정성을 쏟아 밥을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같은 반찬과 같은 쌀로 밥을 만들어도 이쪽 식당밥이 다른 학식 식당밥보다 훨씬 맛있다. 얼마나 맛있냐면 점심, 저녁 시간만 되면 인근 택시기사 아저씨들, 택배 기사 아저씨들까지 와서 식사를 할 정도이다. 이렇게나 맛있게 밥을 먹고는 하염없이 셔틀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


아침부터 다툼이 벌어졌다. 얼마 전부터 셔틀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게 된 아저씨가 모르고 셔틀버스 운행을 한번 안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30~40명의 학생들은 30분 넘게 추위에 떨고 있었다. 다툼의 발화점은 운전기사 아저씨의 말투 때문이었다. 깜빡해서 운행을 안했지만 미안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저씨의 말투를 듣고 기분이 풀릴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시간표를 놓친 아저씨였지만, 그 말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고 우린 버스에 탄 채로, 싸움에 볼모 잡힌 채로 그렇게 버스에서 20분을 보내야 했다. 우린 셔틀버스를 타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는 인질이었고, 여느 인질극들이 그렇듯 인질들은 싸움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1동에 있던 여학생들을 문지동으로 이주시키고 1동을 유성구 신종플루 환자 격리소로 이용한다는 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1동에 살던 학생들이 이사하기 시작했고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마다 불이 꺼져있던 1동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왔다. 불이 들어온 방들 중 유독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이 하나 있었다. 1동 꼭대기 층에 있는 방이었는데 이 방은 밤이나, 아침이나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블라인드도 안쳐져 있었기에 내부가 살짝 보였는데 사람은 전혀 안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사감선생님이 못 보실 리 없는 저 방은 왜 항상 불이 켜져 있었던 것일까?


크리스마스 날 저녁이었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옆방에서 틀어 놓은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캐롤을 듣는 건 좋아하지만, 노래 하나가 무한 반복되는 것을 참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확인했다. 제대로 닫혀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 옆방 문을 확인했다. 역시 제대로 닫혀 있었다. 그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옆방 문을 여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고 여기는 화암기숙사니, 그냥 서로서로 양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들 다른 기숙사로 가고 싶지만 탈락한 사람들인데 기숙사 문제로 다퉈서 뭐할까?


내 방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다. 그래서 옷만 입고 방문을 열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오늘도 방에서 나오자 마자, 내 눈에서 닫히고 있던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가 타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었지만 차도르를 썼다 한들 감춰질리 만무했다. 남자 기숙사에 들어온 여자는 부끄러워했다. 나도 부끄러워 했다. 다만, 남자는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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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수기로 제출하려고 했던 글인데, 기숙사 짐싸느냐고 기한을 넘겨버렸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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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심사 통과했습니다.

사는 이야기 2010. 12.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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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심사 준비한다고 한동안 바쁜 바람에 블로그에 글도 계속 못 올렸었습니다.
다행이도 오늘 진행한 석사논문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하게 되어 앞으로 다시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일정도 남짓 남은 유럽여행기를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다 올리는 것을 목표로 부지런히 포스팅 하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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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타고 떠난 유럽여행 34일째

떠나기 2010. 12. 5. 23:30

자동차타고 떠난 유럽여행 서른네번째날 (2007/07/29)

비가 거하게 쏟아지고 난후, 날이 개었다. 이곳에서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산 아래부분에도 구름이 있고 심지어는 개울가에도 구름이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어제보다 아름다운 할슈타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정이 바빴기에 편히 구경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인 프라하까지는 500km, 대략 5시간 걸리는 거리를 가야 했기에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어나니 날씨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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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는 경찰들의 차량 검사가 자주 있다고 한다. 안전벨트 착용은 물론이고 차량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까지 확인하기 때문에 리스 정식 가입자인 내가 체코에서의 모든 운전을 도맡기로 마음을 먹었다. 체코 국경에 도달하기 전에 2시간 정도 가야 하기에 그곳까지의 운전은 큰 누나에게 맞겨 두었다. 가는 도중 소금광산마을의 예쁜 모습들을 구경하고 그문덴도 스쳐지나가고 아름다운 휴양지들을 차에서 나마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라하 가는 길


체코 국경이 가까워 질때쯤 기름이 부족하는 표시등이 나를 긴장하게 했지만, 기억이 안나는 걸로 봐선 긴장만 하고 말은 듯 싶다. 국경을 몇 km 앞두고 누나와 교대하였다. 체코는 EU에 가입한지 얼마 안되어서 국경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복잡한 검사는 아니고 여권을 확인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들어왔다는 도장을 찍어주는 정도의 과정이었다. 유료와 크로나(체코돈)의 비율은 1:30 정도 되었다. 기름은 싼편으로 1L에 1~1.1유로 정도하였다. 7일짜리 체코 고속도로 통행권을 끊고는 다시 프라하로 달렸다.
프라하로 가는 길에 탈만한 고속도로가 없어서 국도를 탔다. 옛날 동구권이라 그런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도로 곳곳에 땜빵이 되어 있었고 길은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국도처럼 길이 일자로 뻥 뚤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전하기 어려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력검사 할때 보는 풍경 같지 않음?!


프라하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정체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루트도 정체되었다(이게 무슨말이지....?). 사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나서 큰누나가 길안내를 맡았는데 그것이 화근 이었다. 하트와 카드놀이를 하다 지친 누나는 내가 받아 놓은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덕분에 길 안내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버렸다. 프라하 근처까지는 프라하라고 써인 이정표만 보고 가면 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자동차, 버스, 기차, 트램이 한 도로에서 달리는 이 도시는 유난히도 복잡하였다. 더군다나 큰누나의 길안내는 처음이라 GPS의 반응이 조금씩 느리고 터널에 들어가면 멈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캠핑장도 지나치고 (고속도로를 타다 들어가는 곳이라 한번 지나치면 꽤나 돌아가야 했다) 터널에서 GPS가 멈춘 것을 파악 못해서 나가는 곳으로 못나가는 등 엄청나게 헤매고 말았다. 인스부르크에서 기욱이와 작은누나가 한일을 나도 저지르고 만것이다. 대략 20~30km정도는 헤맨것 같았다. 어쨌든 캠핑장입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잘보면 사람 3명 있음, 땡볕에 텐트치면 더울까봐 나무 밑에 쳤는데 밤이 되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에 ㄷㄷㄷ


캠핑장은 섬에 있었는데 2개의 캠핑장이 붙어있었다. 첫번째에 있는 캠핑장이 조금 더 쌌지만, 차가 캠핑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두번째 캠핑장을 캠핑장소로 정했다. 비도 오고 햇빛이 내리쬐면 더울까봐 커다란 나무 밑에 있는 잔디밭에 텐트를 차렸다. 캠핑장에 있는 나무는 정말 거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IN-HOME하고 ACTIVE하고 성분이 뭐가 다른거지;;


그러고 보니 프라하에 오는 길에 카르푸에 들려 프라하에서 먹을 음식을 샀었다. 확실히 체코의 물가가 싸긴 했다. EU에 가입하면서 물가가 올랐다는데 그래도 그 동안 가본 여느 나라들 중에 가장 저렴했다. 세계최고의 맥주라는 체코 맥주를 물보다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체코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김치라면인듯? 저 통김치를 라면에 그냥 넣다니 ㄷㄷㄷ


고기도 사고 버섯도 사고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었다. 기욱이를 꼬셔서 리키마튼 베스트 앨범도 구입하였다. 다만, 이곳에서 모르고 탄산이 든 물은 산것은 한가지 아쉬운 실수였다.
이찌 되었건 그곳에서 산 고기를 구워먹었다. 꽤나 오랜만에 먹는 고기였다. 너무 오랜만에 사서 그런지 조금은 무리하게 고기를 샀었다. 먹고 먹고 또 먹고 있는 힘것 먹었지만 결국 고기를 남기고 말았다. 식사 후 산책겸 살짝 구경도 할겸 그렇게 예쁘다는 프라하의 야경을 보러 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통단속이 심하고 견인도 많이 해 간다는 프라하였지만 시간이 늦었고 주변에 차가 주차되어 있는 건물 사이로 들어가 주차해 두었다. 길을 따라 프라하성에서 뻗어 나오는 xxx 다리(기억 안나는데 찾기 귀찮아요...이거 퀴즈임) 로 갔다. 야경을 보러 온 것인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가져온 삼각대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게 왠걸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직 시작했다. 근 몇일동안 춥게 지내서 40도를 오르내린다는 프라하만 믿고 있었는데 이곳도 비가 주르르륵 쏟아지고 바람도 불고......아이ㅅ.-_-. 비가 오면 몸보다 소중한 것이 카메라이다. 비를 안맞게 하려고 이곳저것 뛰어 다녔는데 다행히 곧 비는 잠잠해졌다. 다리를 건너 프라하성과 다리의 불빛을 동시에 찍으러 갔다. 전력이 부족한지, 여름철 절전인지 몰라도 다리를 밝히는 조명이 너무 부실했다. 미모는 화장빨이고 건물은 조명빨이라고 허접한 조명 때문에 생각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동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Club의 불빛만이 유난 히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저기 밝은게 프라하성, 어두운게 xxx 다리


Live Show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성인들을 위한 Show를 하는 곳들이 몇군데 있었고 친절하게 가게 앞 모니터를 통해 Preview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프라하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이곳 저곳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상처럼. 기념품 가게에 갔는데 들어오는 한국인 여자들보고 예쁘다는 소리와 함께 주인이 인사하였다. 역시 관광지라 그런지 상술이 장난 아님을 또 다시 깨닫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유럽가기 전에 서울에서 앤디워홀전하고 있었는데 여기도 하고 있어서 "앤디워홀 참 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기욱이와 '보리밭에 흔들리는 바람'을 보다 잠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 같았다.

 

오늘 거쳐간 도시들 :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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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 별세

카테고리 없음 2010. 12. 5. 14:00
"이야기 해주고 싶은게 많지만, 교과서에 없어서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말해줄 시간이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 광복을 끝으로 끝나버린 사회교과서를 덮으면서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근현대사에 대한 호기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호기심에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것이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였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지만 그 분은 당연한 일을 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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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사는 이야기 2010. 10. 11. 07:00

불안한 것이 너무 많다.
용기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일,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고 그러기에 끊임없이 불안함에 시달린다.

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이 두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4년전 휴학을 하면서 경험한 일이다.
나를 이해해 주실거라 믿었던 부모님은 나를 이해해주시지 못했고,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날이후로 나는 아무대도 발 딛지 못하고 공중에 부유하는 사람이 됐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항상 너를 믿는다"라고 말씀하시지만,
부모님에게 준 실망감으로 인해 한순간에 깨져버린 믿음을 목격한 이상,
더 이상 그것에 마음 놓고 기댈수도 마음 놓고 서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자각하지 않더라도 예전과 같은 혹은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또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곡해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믿는다"라는 말도 사실 몹시 불안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뜻 어떤 것을 도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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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from earth

생각하기 2010. 10. 5. 18:30

이 영화의 핵심은 종교가 갖는 증명 불가능성을 교묘하게 비꼬는 것입니다.
러셀의 찻주전자와 같이 자신 스스로를 예수라고 불린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대화를 통해 여러 논증을 거친것처럼 이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믿고는 종교가 그렇듯이 '믿음'과 '믿지않음', 자기 의지에 따른 두가지 선택만 있을 뿐이죠.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종교는 믿음입니다.
신의 존재는 결코 증명될 수 없기에 믿음으로만 종교가 유지될 수 있을 뿐이죠.
그것도 타인의 믿음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믿음으로 말입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불교, 천주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를 더 싫어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문구로 각인된 개신교의 전도활동은 기독교인들을 불편하게 만든 영화 속 남자의 행동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영화 속 남자는 증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말만 하고 있지만,
그들은 증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잣대로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니까요.

신의 존재가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패러독스라면,
자신의 믿음은 인정하면서 타인의 믿음은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태도는 영원히 풀 수 없는 패러독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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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에

사는 이야기 2010. 9. 2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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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은데...진짜 할말이 너~무 많은데...어찌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네...직접 말하기도 그렇고...(산수유 광고톤으로)
(블로그에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생각이 많고 말이 많아서 그런지 글로 써지질 않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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