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 폴 오스터

Element 2010. 7. 20. 00:30
자기 스스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왔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마련이다. 이 때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현실이 아닌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가장 일깨워주는 방법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영화 속 현실이 아닌 영화 속 가상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도 현실이 아닌 영화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폴 오스터의 소설, 어둠 속 남자도 그러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노인은 잠이 안오는 밤 시간동안 머리 속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부인과 평화롭게 잠을 자다가 갑자기 미국에서 내전이 난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그는 군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책은 노인의 과거 회상과 노인이 상상해낸 이야기를 끊임없이 오고 간다.

절망을 곁에 두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노인은 자신의 상상 속의 인물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잔인한 상상 속 세상을 보며 상상 속 세상이 결코 가공의 세상이 아닌, 단지 현실이 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책 속의 노인도 결국 저자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지각으로 이어진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라크 전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책 속의 세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예전에 블로그에 "상상은 위안을 준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우리는 소망하고 소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을 한다. 비록 머리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상상이지만 그렇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현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상상이란 가상이 아닌 우리가 희망하는 현실의 모습일 것이다. 완전한 객관도 완전한 주관도 없는 것처럼 상상은 현실이기도 하고 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소설을 보며 영화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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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코드

Element 2010. 6.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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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기대했던 책인데 생각보다 난관이 많았다.
내가 알고 있는 미국문화가 진짜 미국문화와 달라서 생긴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컬처코드를 공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알아낸 컬처코드를 그에 맞는 상황에 재단하면서 납득시키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 대한 우호도가 떨어진게 각 나라에서 미국을 생각하는 컬처코드와 미국의 행동이 맞지 않아서 였다고 하지만.
사실 저렇게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단순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발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미국의 컬처코드와 비슷한 영국이나, 전혀 다른 프랑스나, 혹은 중간에 놓인 독일에서의 미국 지지도도 이라크전 이후 모두 비슷하게 내려가지 않았던가.
프랑스인이지만 미국인처럼 되어버린 저자는 어느 덧 미국문화라는 덫에 갇쳐버린 것 같다.

읽으면서 미국의 컬처코드와 우리나라의 컬처코드가 엄청나게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공감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친 후 맨땅에서 다시 시작한 것은 미국의 역사와 비슷했고,
미군의 영향인지 우리나라의 문화도 미국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이 공존하고 있다.
물론 미국적인 문화 사이에 동양적인 문화가 섞여 있어서 복잡하긴 하지만.
(단적인 예로 연애의 Cool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드라마나 노래에는 순애보를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인기를 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생명체(....는 아니고)를 볼 때 우리의 시각이 아닌 그들의 문화적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이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일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도 미국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게 이 책의 문제지만.(다양한 문화에 대해 말할때는 공저자를 두어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말하는게 좋을 것 같다). 제대로된 해결책은 얻을 수 없지만 문제점에 대해서(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그렇다고 다시 읽지는 않을테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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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Element 2010. 5. 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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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최근에 이렇게 빨리 읽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단 3일만에 한권의 책을 다 읽었으니.

예전에 몇번 블로그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 읽기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 읽기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다.
평생 물질을 해왔지만 물속에서 불과 1분 밖에 못하는 해녀 같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생활화 하고 있지만 나의 한계시간은 1시간 남짓 정도 밖에 안된다.
딱 50~60페이지 정도 읽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읽더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져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심지어 한권 읽는데 1시간이 걸리는 만화책인 소년탐정 김전일은 한번에 1권씩 밖에 읽지 못한다.)

책을 읽고 읽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
이런 상황을 타게 하기 위한 나의 방법은 나눠 읽기다.
한번에 한권의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시간을 쪼개서 여러번에 읽으면 짧으면 일주일, 길면 2주일 안에 읽을 수 있다.
나눠 읽기를 하기 위해 항상 책을 들고 다니려고 노력을 한다.
이렇게 책을 들고 다니게 되면 밥을 먹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는 짜투리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양을 읽게 된다.
또한, 책을 읽고 멈춰 있는 시간에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머리 속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기에 읽은 내용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다.


글을 쓰다보니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는데 다시 정리해 보자면.
나는 이 책을 3일 만에 다 읽었다.

내가 3일만에 다 읽을 수 있는 계기는 두 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지필한 이 책의 특징이다.
진중권 전 교수님과 정재승 교수님이 공동으로 지필한 이 책은 21가지 주제에 대해 서로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한다.
미학자(문과)와 과학자(이과)의 설명을 동시에 들을 수 있기에 책 읽기에 집중력이 부족한 나도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시험기간에 수학공부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영어공부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수학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만약 진짜 시험공부였다면 저런 식의 공부는 지루함을 줄이고 동시에 성적도 줄이겠지만,
책 읽기는 시험이 아니니 저런 식의 구성이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진중권 교수님의 책은 너무 많이 읽었고 (해리포터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저자이실듯)
정재승 교수님의 책은 중, 고등학교 때 과학콘서트를 읽은 다음으로 처음 읽은 책이다.
저자 프로필에 써 있는 "과학 천재이자 글쓰기의 천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글을 잘쓰신다.
우리나라 과학자들 중에 글쓰기로는 유아독존이실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 중에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거의 전무하니.......

작년인가, 이공계 진학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1위로 과학콘서트가 뽑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역시 과학콘서트는 잘 쓴 책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온지 10년이 되어가는 저 책을 넘은 책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과학은 재밌구나"라고 느낄만한 책들이 나와야 그걸 읽은 학생들이 꿈을 키울 수 있을텐데,
우리나라에는 글을 잘쓰는 과학자가 거의 전무하다.
재미와 흥미를 줄 수는 없으니 "그래도 이공계 나오면 취업은 잘된다"며 현실적인 진로라고 자위하지만,
"의대 나오면 취업(?)도 잘되고 돈도 잘번다"는 현실적인 대안에 깨깽거리며 눌릴 수 밖에 없다.


고백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절은 박사 과정 때였다. 박사 과정이 행복했던 이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수많은 책과 논문과 자료를 미친 듯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리고......(후략)



고백건대, 이 석사과정생은 "수많은 책과 논문과 자료를 미친 듯이 읽어야 할 시간"에 크로스를 읽고 있었다.
역시 난 박사가면 안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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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1

Element 2010. 5. 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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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에,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사진에 있다.
미술사에서 불멸의 목표 중 하나였던 완벽한 재현을 해내기 위해 탄생한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미술에 대해 알아야 했다. 사실 꼭 사진이 아니더라도 미술을 좋아하긴 했지만(그리기 말고).

교양으로 들었던 서양미술사, 책 '교양' 그리고 미학 오디세이로 이어지는 미술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고 재미있었다. 한손에는 칼을 다른 한손에는 십자가가 세겨진 방패를, 혹은 한손에는 카타르(칼)을 다른 손에는 코란을 든 전사처럼, 내 한손에는 사진책이 들려 있고 다른 한손에는 미술책이 들려 있다. 한쪽은 순수한 목적을 위해, 다른 한쪽은 내가 방향을 잃었을 때 나에게 해답을 준 것이다.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러시아 회화에서 나오는 '역원근법'에 대한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평행사변형 테이블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 테이블을 그린 그림이다.


역원근법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기존 서양의 회화에서 쓰는 원근법과는 다르게 가까운 곳은 짧게 먼곳은 길게 그리는 것이 이 원근법의 특징이다. 역원근법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역원근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 러시아 사람들은 저렇게 괴상해 보이는 원근법을 쓰게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책에 상세히 써있었다.

앞서 사진과 미술은 땔래야 땔 수 없다는 말을 했었다. 사실 내가 역원근법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이 책에서가 아니라 어떤 작가의 사진을 통해서 였다. 그 작가는 책장과 테이블 같은 것을 찍은 후 포토샵을 통해 역원근법적인 사진으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변화된 사진은 우리가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책장과 테이블을 새롭게 만들었다. 재현이 아닌 재인식, 이것이 바로 현대사진이 추구하는 것이고 러시아 회화에서 쓰던 역원근법을 도입해 그는 사진을 통한 재인식을 이루어냈다.


책을 완독했다고 해서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이 들어오진 않는다.
수학의 정석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책에 나온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도 꾸준함과 반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비슷한 내용 혹은 연관된 내용의 책을 꾸준하게 읽어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의 체계가 잡히는 시기가 오게 될 것이다.
그 순간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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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Element 2010. 5. 2. 17:30


사용자 삽입 이미지고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


미술사에 고흐가 있었다면, 한국 사진사에는 김영갑이 있다.
고흐처럼 평생 그림 한점 밖에 못판것은 아니지만 그도 고흐처럼 가난했고 외로웠다.
말년이 되서 그의 사진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진집을 내게 되었지만,
하늘은 그가 고흐처럼 되길 바랬다.

사진집이라고 생각하고 빌린 책이지만 읽다보니 사진집보다는 수필, 회고록에 가깝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주도로 이사와 20년 넘게, 죽을 때까지 제주도에서 산 그의 글은
어떤 특정 시점이 아닌 그가 제주도에서 산 20년 중에 어느 날에 쓴 글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 글을 쓴 시점이 어느 때인지 몰라서 궁금할 때가 많았다.
어떤 장소에서 언제 찍었는지, 제목은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는 그의 사진들처럼.

김영갑에게는 스님이나 신부님에게 느껴지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놀라움도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 사람처럼 절제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경허함을 느낄 수 있다.
밥은 안 먹어도 필름을 사고 굶을 때도 안했던 막노동을 사진을 찍기 위해 했던 사람.
그는 사진만을 위해 숨을 쉬었고 사진만을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런 그 삶의 자취는 그가 남긴 30만장의 필름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남겨져 있다.


제주도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2년 전에 가본 적이 있었다.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왔다가 부모님에게 말씀 드려 갤러리를 찾았었는데,
고 김영갑 선생님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사진을 구경하게 된 부모님이었지만,
사진에 대해 무척 감동을 받으신 것 같았다. "사진책 하나 살까" 말씀하실 정도로.

혹시 제주도에 가시는 분은 꼭 한번 두오악에 들리시길 추천한다..
사진에 아무런 설명도, 제목도 달지 않고 사진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길 바랬던 고 김영갑 선생님의 뜻처럼,
그 분의 사진은 보신다면 분명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에 최초로 입장권을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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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Element 2010. 4. 14. 17:30
역사를 배울 때는 우리는 승리와 영광의 역사들을 위주로 배우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민주주의의 한축인 민주주의의 발전사, 성공기에 대해서는 상세히 배우지만,
다른 한축인 자유시장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역사책을 읽어 보면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 정복,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런 책들의 강조점은 완전히 틀렸다. 국왕들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기보다 왕권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즉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국왕들은 언제나 상인과 금융업자의 재정적 원조가 필요 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왕권의 배후에 있는 권력이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사와는 다르게 찬란하지 않다.
그 이면에는 자본수탈, 아동노동, 노예제 등 어두운 면들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자본 설비, 노동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도 생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여러분이 처음에 그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공황의 원인은 비밀로 남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교환을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이윤을 얻을 기회가 주어질 때만 땅에서 광물을 채굴하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산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고, 상품을 사고 판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저자를 보면, 혹시 사회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실 그 때 세상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딱 2가지로 나눠져 있었을 때 였다.
1936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한계가 들어났고 독재로 사회주의의 한계가 들어난 후 였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답없다". - 21세기에 태어났다면 몇가지 대안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한가지 신기한 것은 이 저자도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책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다가 갑작스러운 발발로 일어난 세계 2차대전으로 설명되는데,
사실은 세상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최소 몇년 전부터 전쟁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미리 대피하고 전쟁으로부터 이득을 얻어 낼 방법을 충분히 고안해 낼 수 있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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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로

Element 2010. 4. 3. 13:11

잠시 생각해보자.
나는 소설보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일반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더 좋아한다.
더 좋아한다고 해서 소설이나 멜로 영화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는 감동을 받아 몇시간 동안 그 생각 때문에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것에 비해 다큐멘터리에 더욱 더 손이 간다.
왜 그런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깨달았다.
노순택의 글과 사진을 보고 읽으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혼혈인을 다룬 이재갑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나는 순간 순간 눈시울을 붉였고,
혹시나 비행기에 있는 다른 승객들이 내 모습을 보게 될까봐 잠시 책을 덮고 마음을 가담 듬어야 했다.
그랬다.
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향기가 아닌 사람들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고,
멋도, 아름다움도 아닌 감동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기에 다큐멘터리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ps. 혹시 이 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서점에 가서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꼭 추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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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Element 2010. 3. 24. 00:33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만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는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만화책을 읽은 책 목록에 넣기에는 부끄럽기에 넣질 않는다.
그러나 최규석의 책은 예외이다.
미술관 화보집을 그림책이라 말하지 않듯이 나는 그의 책을 만화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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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Element 2010. 3.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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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2권을 다 읽은지 어언 1년이 지난 시점에 미학 오디세이 3권을 읽기 시작했다. 3권은 1권과 2권이 나온지 10년이 지난 후, 따로 나온 책이라 사실 미학 오디세이 별책으로 여겨야 할만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에셔와 마그리트라는 두 인물로 풀어갔던 1,2권에 비해 피라네시라는 인물은 많이 약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앞에 두 인물과는 다르게 그림 속에 담겨진 모순을 잘 보이지 않게 숨겨놓아서 그걸 찾기가 힘들었고, 더군다나 판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왜 피라네시를 택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책의 전반적인 흥미를 반감시켰다는 데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책의 흥미진진함은 앞의 두 권에 비해 떨어지지만 말솜씨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을 여러가지 그림과 설명을 통해 풀어냈기에 완벽히 이해는 못해도 읽을 당시 고개를 끄떡이게는 된다. "시뮬라크르와 스뮬라시옹"에서 나오는 현실과 가상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이 현실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인식하고 재인식하게 하는 것임을 이야기 해준다. 가상이 현실을 뒤업고 가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결국 매트릭스를 알면서도 매트릭스 속에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다시 한번 인지해준다. 네오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보는 순간 또 다른 매트릭스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플라톤 : 그럼 내 말이 맞지 않나. 우리가 눈에 보는 현실은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
디오게 : 그렇게 되나?
플라톤 : 그게 삶이지. 언젠가는 참된 세계에서 깨어나기를 꿈꾸며 사는 것.......
디오게 : 하지만 그 세계도 또 다른 꿈일터. 그냥 거대한 우주의 바퀴를 굴리며 꿈속에서 함께 놀지 않으려나?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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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 맞서다

Element 2010. 2.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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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름에 술자리에 갔다가 졸업하고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나는 그 친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안난다...-ㅁ-)
그 친구에게 몇살 아래인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한다.
이번에 휴가를 나오면서(친구는 ROTC로 복무 중) 동생을 만났는데 동생을 만나는 동안 자기가 모든 돈을 냈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같은 옷만 입고 있어서 옷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돈 없이 생활하던게 너무 힘들었던지 "나는 돈을 엄청 많이 벌꺼야"라고 말할 정도로 돈에 대한 한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친구 말로는 그 나이 또래에 노는 여자애들에게 동생이름을 말하면 갑자기 애들이 싹싹해질 정도로 고향에서는 잘나갔던 동생이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 잘나가는 애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세상에 내몰린 것 같다.
친구 말로는 자기집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아마 대학도 안갔을 것이고 졸업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르바이트 뿐이었을 것이다.
Free라는 단어가 왜 붙었는지 이해는 못하지만 일본 프리타의 한국판이 바로 친구 동생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우리가 일본을 말할 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10년이 뒤쳐져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지금 일본의 모습이 10년뒤 우리나라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 일본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황의 늪은 완전고용이라는 일본의 문화를 180도로 바꾼 계기였다.
그 후의 이야기는 IMF를 겪은 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대기업, 은행들이 하나둘씩 무너졌고 완전고용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노동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정규직 일자리들은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고,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세대에게는 해고의 불안감이, 일을 잡으려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비정규직의 불안감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불안감이 가속화되고 사회가 점점 더 하향평준화 된다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도시 곳곳에서 늘어나는 노숙자들의 숫자였다.
의식주,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 3가지 요소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가 안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다.


지은이의 글 중 가장 신선했던 것은 '다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어로 '저수지'를 뜻하는 다메xx에서 따왔다고 하는 이 단어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여유(자본)을 뜻한다.
각자 가진 다메의 크기에 따라 같은 위기에 처하더라도 대처와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잠자리나 밥 걱정을 하게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부모라는 다메가 있다면,
부모가 가진 집과 부모가 제공해주는 밥을 통해 잠시 찾아온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메가 작은 사람이라면, 즉 의지할 부모도 없고 도움을 받을 만한 친구도 없는 상황이라면,
잠시 찾아온 이 위기가 그 사람에게는 정말 절체 절명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개개인간의 다메를 고려하지 않고 빈곤 문제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잘못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빈곤의 대물림 만드는 5중 배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육과정에서의 배제, 기업 복지에서의 배제, 가족복지에서의 배제 , 공적 복지에서의 배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의 배제까지.
빈곤은 이러한 5가지의 배제를 순서대로 만들어나가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배제의 극단적인 사례까지 만들게 한다.
사회적 문제 또는 구조적 문제들까지 개개인의 잘못으로 돌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배제하게 되는 상황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내 글 솜씨의 한계상,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아쉽다.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특히, 역이나 지하도로에 있는 노숙자들이 막노동이나 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왜 그러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추가. 도움이 될만한 경향신문 기사
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41&newsid=20100221181709702&p=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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