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꼴형 인간계

생각하기 2007. 4. 16. 19:04
   나의 친분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자면 옆으로 길게 늘어진 사다리꼴 형이다. 내가 이름은 잘못 외워도 얼굴 외우는건 잘해서 그런지 평소에 안면만(!) 있어서 인사하고 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다만 말 그대로 안면만 있어서 몇년이 지나도 계속 인사만 하는 관계일 뿐이다. 어떻게 하다가 서로 인사를 하게된 사이인지도 기억이 안날 정도로 관계가 얕은 사이이다.
   두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친구라고 부르는 사이이다. 평소 보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특별한 일이나 모임이 있지 않을 때는 만나지 않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 단계의 사람들도 상당히 많지만 두리뭉실한 인간관계를 가진 나에게는 두번째 단계의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는 사이가 되버린 사람들말이다. 수란이 누나가 말해주었던, 어느 그룹에 속하지도 않고 두루친해서(?) 과대를 계속 할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넘길 사람도 없다는 말이 이 사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대목인 듯 싶다.
   세번째 단계는 친한 친구사이이다. 친한 친구가 어디까지의 범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평소에 자주 대화도 하고 심심하면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술도 마시고 놀기도 하는 사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평등주의자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더 친분이 있고 없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 같은 친한 친구들일 뿐이다. (실망하지 마세요) 반대로 말해서 가장 친한 친구를 말하라고 하면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다.
   마지막 단계를 꼭대기이다. 지난 20년동안 두려움이 앞서서 였는지 마땅한 사람을 못 찾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분신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남자이든 여자이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이나 고민을 말하기 보다는 스스로 고뇌하면서 해결하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사실, 내가 누구에게 '아'라고 말할 때, 그 이면에 있는 내 머리 속에는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라는 생각을 다 해본 후이다.
   종교를 가졌다면 신이 꼭대기에 있겠지만 신은 어느 정도 믿지만 무교인 내가 신을 꼭대기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인생의 배우자를 위해 꼭대기를 비어두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자친구조차 없는 내가 그 자리가 언제 채워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인생의 배우자가 평생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강한 회의를 가지고 있는 내가 (인간의 모든 행동은 과거와의 연관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원인을 따질 필요없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그 자리에 한 사람이 들어와 평생 있어 줄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그리고 나니 참으로 피라미드에 계층이 없다. 그러기에 나의 인간관계에 깊이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는 것 같다. 꼭대기에 누구를 올려보내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깊이 없이 만드는 것이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 동생, 할머니 같은 친지들과의 관계도 다를 게 없다.
   가장 슬픈 것은 내가 죽었을 때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인가? 아니면 내가 죽을 때 누구에게 나를 말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인가? 정보통신사회인 21세기에 사는 내가 죽어 있는 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도 내가 받고 싶은 문자나 전화는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오는 것인데 어쩌겠는가? (트라우마의 원인)
   사실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나의 분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꼭대기가 비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외롭다고 단 한 사람으로 정해둔 그 자리에 아무나 올려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나의 행동이 외로움을 고독으로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20년 넘게 기다려왔으니 계속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을 찾으면 내 인생은 행복했다고 말할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행복을 만나기 전에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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