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Element 2008. 6. 26. 12:26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동물농장이라는 만화영화를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인간이 없는 동물들이 농장을 지배했고 어떤 말이 마차에 끌려 죽으러 가는 장면과 돼지들이 서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유난이도 재미가 없는 만화영화였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주인공 킹왕짱의 상황도 없고 노래방가면 "꼬마자동차 붕붕"이나 "꾸러기 수비대"말고 부를만한 즐거운 주제가도 없었다. 한마디로 재미없었다. 그런 내가 10년도 훨씬 지나서 그 재미없던 만화의 원작 소설을 읽으려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디씨인사이드 도서갤러리에서는 추앙 받는 작가이다(어딜가든 추앙 받겠지만). 내가 읽으려하는 동물농장을 비롯해서, 그의 마지막 작품인 1984년에서는 50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주옥 같은 그의 작품들은 항상 읽고 싶은 독서목록에 들어가 있었지만, 정작 읽는 것은 치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KAIST 친구의 기숙사에 놀러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권이 아닌 두권씩이나.
   표현은 번역을 한 회사나 역자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두 책이 똑같다. 그러니 그 친구에게는 두권 중의 한권은 동시에는 쓸 수 없는 같은 색 모자 2개와 같다고 생각되어 한권을 받아왔다. 다른 한권의 책보다는 얇지만 세계문학전집으로 유명한 민음사의 책으로. 책은 얇아서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니기 편했다. 덕분에 서울에 올라간 두번 모두 부담없이 책을 들고 가서 읽을 수 있었고 심심했던 6.10에도 그 책은 큰 즐거움이 됐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대부분의 등장동물들이 동물이고 대부분의 사건들이 동물농장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지만 풍자소설답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자연스럽게 매치가 이루어졌다. 메이저 농장의 동물들의 반란, 즉 차르를 내쫒고 소비에트를 만든 러시아혁명에서부터 매치가 되고 스노볼이 나폴레옹에 의해 쫏겨나는 것은 트로츠키의 몰락과 스탈린의 독재와 매치가 된다.

다음은 동물농장의 나오는 인물, 상황들과 그것의 시대적 문맥이 된 현실세계 사이의 연관관계이다.

존즈 -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
메이저 - 마르크스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돼지들 - 볼셰비키
복서 - 프롤레타리아트
동물반란 - 러시아 혁명
모이즈 - 러시아 정교
몰리 - 러시아 백인/백군
스퀼러 - 프라우다
개들 - 비밀경찰
오리들 - 선전대
미니무스 - 마야코프스키
필킹턴 - 영국
프레드릭 - 독일
농장 본채 - 크렘린
동물재판 - 모스크바 재판
동물학살 -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
외양간 전투 - 1918-19년의 연합군 침공
풍차 전투 -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
풍차 -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들
노래 <잉글랜드의 짐승들> - 인터내셔널
 

   이 책이 놀라운 점은 작품이 쓰여진지 50년이 지난 미래를 예측함과 동시에 현재의 모습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들과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동물농장의 마지막 모습은 1990년대 냉전의 완전한 종말과 함께 자본주의화되고 기존의 지배계칭들은 공산당원에서 자본가로 탈바꿈을 해버린 지금 러시아의 모습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언했다. 러시아는 자신의 체제를 포기함에 따라 많은 경제위기를 겪었고 러시아 여성들이 우리나라 유흥업소에 와서 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신흥부자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는 이면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순히 이러한 실패를 이 소설이 풍자한 소련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혁명도 결과론적으로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를 낳았고 우리의 최초의 시민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4.19혁명도 결국 박정희라는 또 하나의 독재자를 낳았을 뿐이었다. 모두가 바라고 희망했던 유토피아적 미래를 오지 않았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미래, 과거와는 약간 좋아진 또다른 과거가 반복될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왜 혁명을 이끈 다수가 꿈꾸던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시 소수에 의해 통치를 받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조지 오웰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소설 속에 담아 놓았다. 모든 동물들을 위한 혁명이 첫번째로 어긋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돼지들이 그들을 위해 젓소들에게서 짠 우유와 사과를 자기들끼리 먹기로 한 사건이다. 이때 그들은 뭔가 일이 잘못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다. 동물들이 권력을 부여해준 돼지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잘못을 비판하지 못하는 순간, 자신들이 부여해준 권력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중요함은 바로 이곳에 있다. 20세기에 존재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개개인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효율성을 위해 선거를 통해 뽑은 대리인에게 권력을 양도해준다. 그러나 권력이 쓰여지는 대부분의 모습을 보면, 선거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분명 권력으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으로부터 나오지만 권력을 부여 받은 사람을 보면, 한사람, 한사람이 아닌 단 한사람을 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선거라는 민주주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대표를 뽑았지만, 그 후에 그가 제대로된 목표(더 좋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선거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사실 개인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세상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이다. 사실상 그 유토피아란 단 한사람만이 절대적으로 행복한, 세상의 신이 되는 세상과 같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권력을 빌려주었지만 권력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된다. 기름만 넣고 핸들에는 손을 놓아버린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제대로 가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 아닐까?

   책 말미에는 조지 오웰이 생전에 쓴 수필이 2개 실려있다. 그 중 하나는 조지 오웰이 작가가 된 이유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6살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거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연습과 상황과 배경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무척 많이 했다고 한다. 한번 따라해보려고 버스에서 그 속 풍경을 묘사했으나, 초등학교 1학년 첫 미술시간, 크래파스를 쥐고 스케치북 앞에서 막연히 앉아있던 그 때처럼 막막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걸 봐선, 소설가는 확실히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
   그는 글을 쓰는 이유를 크게 4가지로 보았다. 이 기준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고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했다. 일단 돈이라는 이유는 제외하고, 자기만족, 미학적만족, 잘 생각 안나는 한가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이유. 조지 오웰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였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 그가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휴머니즘이 없는 소설은 없다고 한다. 동물이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고 하여도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어느 소설도 휴머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설 속 휴머니즘이란 등장인물간의 사랑이나 우애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소설이 읽는 독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없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아닌 만들어진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동떨어져있는 소설을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물농장은 휴머니즘으로 가득 차있다. 비록 그 속에는 남녀간의 사랑이나 우애가 없지만, 조지 조웰의 마음속에서 묻어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희망이 소설 곳곳에 묻어져 나온다. 휴머니즘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을 뜻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 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시대의 고전들은 인간다움을 높이고 새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을 보여주었기에 휴머니즘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상의 배경속에 가상의 존재들의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반영하고 사람과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말해주는 이 소설이야 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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