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 서커스, 모던 타임즈, 황금광시대

Element 2007. 3. 19. 20: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찰리 채플린 - 서커스, 모던 타임즈, 황금광시대

   내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집에 갔다가 우연히 '서커스'라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부터였다. 웃기게 생긴 복장을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던 우울함을 비슷함을 찾을 수 있었다. 서커스의 광대들이 눈물을 흘리는 표정으로 얼굴에 화장을 한 것처럼, 찰리 채플린의 복장이나 행동도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현대인들의 표상인 것이다.

   나는 찰리 채플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처럼 내 속에 있던 슬픔을 그와 같은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므로써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허름해보이는 복장도 사실 정장은 정장이었기에 경제적 부담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그의 작품을 하나둘씩 보기 시작했다.
   일단 학교 멀티미디어실에 DVD 여러장으로 된 찰리채플린 단편영화 모음집이 있었다. 그 중 재미있어 보이는 것 하나를 빌려서 보았고 그와 동시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는 3가지 영화, 모던 타임즈(1936년), 황금광시대(1925년) 그리고 위대한 독재자(1940년)을 찾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이 배우로써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게된 계기인 '황금광시대'는 찰리 채플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은 '서커스'와 비슷한데, 우연한 계기로 황금을 찾아 떠나게 되고 눈 속에 조난이 되고 사랑에도 실패하는 좌절을 겪지만, 결국에는 찰리 채플린의 의도치 않은 행동 덕분에 행운을 얻게 되어 돈과 사랑 2가지를 모두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빛이 나는 것은 역시 찰리 채플린의 몸 연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몸연기의 핵심은 과장된과 어뚱함이 섞인 행동들이다. 사실 어뚱하다고 말은 하지만, 술에 취했을 때 나오는 행동을 생각하면 공감이 되는 점이 많이 있다. 사회가 나에게 준, 혹은 내가 사회에 가지고 있는 제약을 벗어나 무인도에 사는 사람처럼 살아왔다면 저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될 수 없는 현실이 있기에 우리가 그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잇는 것이다.
   사실 80년이 넘게 지난 영화가 지금에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실로 놀라울 수 밖에 없다. 뒤에 나오는 해설들에 의하면 찰리 채플린은 대본을 가지지도 않고 촬영장에서 매번 생각나는 것을 즉흥적으로 행동해서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실로 천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의 재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찰리 채플린이 배우 겸 감독으로 성공하고 영화계에 길이 남게 된 것은 뒤에 두 작품인 모던 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의 영향이 크다. 산업 혁명 이후 기계화 되고 반복화 된 삶의 모습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모던 타임즈이다.
   모던 타임즈에서의 인간은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한 부품에 불과하지 않다. 기계의 각 기어들이 정해진 속도로 정해진 행동을 계속 하듯이, 인간도 기계가 정해준 속도록 정해진 행동을 반복한다. 또한 기업의 이익이라는 기업의 최우선 과제에 맞물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한계치로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억압한다. 모던 타임즈 속의 사람들에게 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기계의 속도에 맞추어서 행동할 뿐이며 자신의 일을 대체할 다음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일을 잠시 멈출 자유도 없다. 그들에게 올수 있는 유일한 여유는 자신이 다니는 기업이 파업을 해서 공장을 완전히 멈출 때 뿐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찰리 채플린은 우연히 파업의 선봉장이 된다. 나는 이 장면이 찰리 채플린 영화의 개그 센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벌어진 일은 눈사태가 나듯 점점 더 부풀어지고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갈수록 일이 커지는 모습에 관객들이 재미는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연히 깃발을 들게된 찰리 채플린과 뒤에 보이는 파업 군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연히 합류한 찰리 채플린은 파업대를 이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개그맨이 되었다. 다들 마음속에 우울함과 슬픔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는 웃는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기에 모두 웃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웃음을 짓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웃음일까? 자신의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불쌍한 현대인,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 나라고 생각하니 슬프기만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찰리 채플린처럼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 세상이 즐거운 것일까?

Ps. 위대한 독재자는 다 보지 못해서 옴겨 적지 못했다.
     초반부분을 보기 시작했는데 내용도 재미있고 시대적 상황도 재미있는거 같아서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