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액션스쿨 첫날

사는 이야기 2008. 8. 27. 00:17

   우연하게 저질른 일탈이었다. 미디어액션스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출발일의 2일전인 8월 19일이었다. 다소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출발을 하는 목요일에는 전 룸메이트의 졸업식이 있었고 전산전공인 내가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강을 앞둔 4일을 학교에서 보낸다고 한들 즐겁게 지낼 거 같지는 않았다. 나는 슬픔 속에 있었고 그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일탈이 필요했다.

   버스를 타고 대전역, 기차를 타고 서울역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시청 프레스센터 앞에 도착했다. 5년 전에는 새롭기만 했던 이 장소들이 지금은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예상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했어서 그런지 프레스 센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캠프 참가자들처럼 보이는 여학생 2명이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말을 걸어보려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40분을 혼자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장흥으로 이동했다. 장흥에 있는 레마르크 펜션이 미디어액션스쿨이 진행되는 장소였다. 가던 도중에 뉴타운 논란의 핵인 은평 뉴타운도 보고는 잠시 상념에 잠겼고 펜션에 도착해서는 '홈페이지 사진하고 많이 다른걸....-ㅁ-'이라는 의문에 빠졌다. 아무튼 28명의 Unknown들과의 캠프가 시작된 것이다.

   1층 홀에 짐을 내려놓고 술집 분위기의 2층 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게 늘어진 탁자에 앉았고 그곳에 앉지 못한 몇명만이 원형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 앉았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나까지 포함해서 4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나는 모두 모르는 사이인줄 알았는데, 나와 함께 앉은 3명은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인듯 했다. 소년탐정과 같은 눈치로 책에 적혀있는 '홍익대학교 도서관장서'라는 글귀를 보고 홍익대학교 학생들인걸 알았다. 그리하여 오자마자 혼자 외톨이가 되었다.
   첫째 날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이신 조준상님의 '미디어와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와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이신 전규찬 교수님의 '촛불집회, 민주적-자율적 대중교통의 빅뱅'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있었다. 미디어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이야기 해야 하는 현실이 강의를 듣는 내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자명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이해안되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4년 반동안 그 것을 지킬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대통령, 국회, 지방의회 그리고 재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바위에 던질만한 4700만개의 계란들 뿐이지 않나.
   이어서 강의를 하신 전규찬 교수님께서는 왼손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위해 잠시 뻗고 있는 오른손을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난 100일간의 촛불시위의 성과는 성과이지만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촛불시위에서 한발 벗어나 새로운 촛불을 일으킬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같은 것들이다. 결국 보수 진영에서는 '너만 생각하라. 돈이 행복이다'라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진보에서는 보수정책의 반대만 있을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아니라, 진보의 행복을 표현 할 수 있는 한 문장의 표어가 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강의가 끝난 후, 친목을 다지기 위한 친밀감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무작위로 나누어주고 그 인물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발표를 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받은 사진 속에는 모자를 쓴 여자가 있었다.
   내 개그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내용에 대해 고민고민 생각해보고 살짝 비틀어서 말하거나 다른 것을 패러디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의 풍부함보다는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꾸미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인터뷰를 받고 인터뷰를 하기에 20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한 인터뷰는 짧았고 나는 그 내용을 재미있게 꾸미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망.....-_ㅠ. 리허설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준비했던 거 놓치고 이명박 대통령 패러디를 전혀 안 비슷하게 해서 아무도 패러디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 바람에 본론의 호소력도 사라졌다. 내가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인터뷰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I'm so sorry but....;;;
   서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끝난 후, 남자 숙소인 버섯 속 방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2층방이었지만 작았기에 남자 10명이 잠을 자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어찌 어찌 10명이 모두 잘 공간이 마련되었다.


   어둠 속에 몸을 누웠다.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닌데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로 눈을 떴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칠흑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 때의 내 심정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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