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액션스쿨 둘째날

사는 이야기 2008. 9. 4. 23:56
   일어나니 토할거 같이 속이 매슥거렸다. 어제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나름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오늘은 이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언론사 탐방을 가기에 몸단장을 확실히 해야 했다.
   탐방은 2팀으로 나뉘어져 진행이 된다. 한팀은 한겨례신문사와 MBC를 가고 다른 한팀은 경향신문과 KBS를 방문한다. MBC는 시사쪽으로 KBS는 예능쪽으로 맞춰져 있었기에 나는 MBC쪽을 택했다. MBC를 가면 광우병사태의 핵이 되어버린 PD수첩의 김보슬PD와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한재희PD를 만나게 된다. 으...떨려
   창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시간여행이라도 하듯이 버스는 어제 지나갔던 길을 정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빌딩 숲을 걷어내고 처음으로 본 북한산의 모습은 이성계아저씨가 닭둥지(계룡산)을 버리고 서울로 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경향신문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우리는 생각보다 큰 한겨례신문 본사 앞에 서 있었다. 아! 비오지, 빨리 들어가자.

   창사 20주년을 맞이한 한겨례의 20주년 기념 동영상을 감상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겨례에서 보는 조중동의 모습이나 경향신문과의 라이벌 관계 등의 여러가지 질문이 오갔다. 나는 인터넷(온라인)에 대한 신문사의 대처방안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IPTV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신문이 새롭게 등장하는 온라인 매체와 맞서 싸우는데 많이 힘들 것이다. 일단, 포탈에 종속되어 기사를 보내고 있고 독자들의 신뢰도 면에서는 TV를 따라오질 못한다. 글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좋아하는 세대들에게 더 이상 기사 읽기를 강요하기란 힘들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신문의 장점을 살릴 방법을 찾는게 유일한 해법일 듯 싶다.

   일정의 중간에 SBS에 방문해 웃찾사 리허설을 관람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일정표에서 가장 걱정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개그콘서트도 안본지 거진 2년이 되어가는데 웃찾사는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더군다나 관객도 없는 리허설이었다. 웃을 것인가 아니면 비웃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예상대로 Zzzzzzzz. 개그가 너무나도 유치하다. 말장난, 몸개그 혹은 얼굴 비하개그.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웃질 않았고 내 뒤에 앉아있던 초등학생들 둘만 깔깔깔 거렸다. 어머니가 일전에 웃찾사를 보고는 선생님들에게 따라하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다고 하셨는데, 역시나 개그 코드가 초중고 정도 인듯 하다. 그걸 리허설 한번, 본방 한번, 이렇게 매주 2번씩 보시는 카메라맨 아저씨께서는 매우 지루하신지 모니터링 화면을 올림픽으로 바꾸어놓고는 그걸 보고 계셨다. 역시 웃음을 찾아가는 과정은 힘들다.

   저녁 식사는 3대 방송사 중 가장 맛있다는 MBC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우리가 받은 식권은 3000원이라고 써져있었는데 먹은 음식을 되새겨보면 분명 이 음식에 배후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불과 3000원으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다 과일과 샐러드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다니 말이 안된다. 하루 빨리 배후를 알아내 2500원인 우리학교 식당도 저런 음식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저녁 일정은 PD수첩의 김보슬PD와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한재희PD 그리고 미디어액션캠프 학생들과 함께하는 대담이 있었다. 시선은 시선집중보다는 PD수첩에 모아졌다. 여러가지 우려 섞인 이야기가 나왔고 비록 3관왕(사과방송, 형사소송, 민사소송)을 받은 김보슬PD였지만 황우석 사태때보다는 괜찮다고 위안을 받고 계셨다. 생각해보면 전국민을 넘어서 전세계가 낚인 희대의 사건이었지만 이렇게 의외의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어쨌든,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결론은 MBC의 미래도 무척 위험하는 것이다. 암울하군. (추가 - 여기서 만난 PD분들을 직접 기사에서 접하고 동영상으로 접하게 되면 무척이나 신기하다. 내가 에픽하이나 Nell을 처음 보았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였던 것 같다. 가수들은 사회의 핵이 아니니)

   숙소로 돌아온 후 부침개와 함께한 간단한(?) 음주시간이 있었다. 오늘도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지만 이불 위에 누우니 속이 매스꺼웠다.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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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액션스쿨 첫날

사는 이야기 2008. 8. 27. 00:17

   우연하게 저질른 일탈이었다. 미디어액션스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출발일의 2일전인 8월 19일이었다. 다소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출발을 하는 목요일에는 전 룸메이트의 졸업식이 있었고 전산전공인 내가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강을 앞둔 4일을 학교에서 보낸다고 한들 즐겁게 지낼 거 같지는 않았다. 나는 슬픔 속에 있었고 그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일탈이 필요했다.

   버스를 타고 대전역, 기차를 타고 서울역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시청 프레스센터 앞에 도착했다. 5년 전에는 새롭기만 했던 이 장소들이 지금은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예상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했어서 그런지 프레스 센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캠프 참가자들처럼 보이는 여학생 2명이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말을 걸어보려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40분을 혼자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장흥으로 이동했다. 장흥에 있는 레마르크 펜션이 미디어액션스쿨이 진행되는 장소였다. 가던 도중에 뉴타운 논란의 핵인 은평 뉴타운도 보고는 잠시 상념에 잠겼고 펜션에 도착해서는 '홈페이지 사진하고 많이 다른걸....-ㅁ-'이라는 의문에 빠졌다. 아무튼 28명의 Unknown들과의 캠프가 시작된 것이다.

   1층 홀에 짐을 내려놓고 술집 분위기의 2층 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게 늘어진 탁자에 앉았고 그곳에 앉지 못한 몇명만이 원형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 앉았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나까지 포함해서 4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나는 모두 모르는 사이인줄 알았는데, 나와 함께 앉은 3명은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인듯 했다. 소년탐정과 같은 눈치로 책에 적혀있는 '홍익대학교 도서관장서'라는 글귀를 보고 홍익대학교 학생들인걸 알았다. 그리하여 오자마자 혼자 외톨이가 되었다.
   첫째 날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이신 조준상님의 '미디어와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와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이신 전규찬 교수님의 '촛불집회, 민주적-자율적 대중교통의 빅뱅'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있었다. 미디어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이야기 해야 하는 현실이 강의를 듣는 내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자명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이해안되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4년 반동안 그 것을 지킬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대통령, 국회, 지방의회 그리고 재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바위에 던질만한 4700만개의 계란들 뿐이지 않나.
   이어서 강의를 하신 전규찬 교수님께서는 왼손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위해 잠시 뻗고 있는 오른손을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난 100일간의 촛불시위의 성과는 성과이지만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촛불시위에서 한발 벗어나 새로운 촛불을 일으킬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같은 것들이다. 결국 보수 진영에서는 '너만 생각하라. 돈이 행복이다'라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진보에서는 보수정책의 반대만 있을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아니라, 진보의 행복을 표현 할 수 있는 한 문장의 표어가 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강의가 끝난 후, 친목을 다지기 위한 친밀감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무작위로 나누어주고 그 인물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발표를 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받은 사진 속에는 모자를 쓴 여자가 있었다.
   내 개그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내용에 대해 고민고민 생각해보고 살짝 비틀어서 말하거나 다른 것을 패러디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의 풍부함보다는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꾸미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인터뷰를 받고 인터뷰를 하기에 20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한 인터뷰는 짧았고 나는 그 내용을 재미있게 꾸미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망.....-_ㅠ. 리허설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준비했던 거 놓치고 이명박 대통령 패러디를 전혀 안 비슷하게 해서 아무도 패러디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 바람에 본론의 호소력도 사라졌다. 내가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인터뷰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I'm so sorry but....;;;
   서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끝난 후, 남자 숙소인 버섯 속 방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2층방이었지만 작았기에 남자 10명이 잠을 자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어찌 어찌 10명이 모두 잘 공간이 마련되었다.


   어둠 속에 몸을 누웠다.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닌데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로 눈을 떴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칠흑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 때의 내 심정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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