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행길

사는 이야기 2010. 1. 20. 00:21

여느 때처럼 버스에 앉자 마자 벨트 먼저 매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요절하기 싫다.
심지어 옆에 빈자리가 있으면 카메라가 요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에게도 벨트를 매어주기도 한다.

버스는 곧이어 출발하였고 버스 좌석이 하나둘씩 기울었다.
고속버스에 타면 내 동생이 어렸을 적에 다녔던 유치원이 생각난다.
내 동생이 다니던 유치원은 내가 다니던 유치원과는 다르게 잠자는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그 어린 아이들이 정해진 시각이 되면 모두 얌전하게 잠들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 의문은 서울을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자주 타고 다닌 후로는 바로 풀렸다.
'사람은 불만 끄면 잠자는 습성을 가진다'
나도 사람이라고 분류되는 사람이기에(?) 고속버스에 타기만 하면 금새 잠이 들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목적지에 다 도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깨고 말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 혹은 아는 사람들이 대전에서 왔다고 하면 멀리서 오느냐 힘들었다고 이야기들 해주지만,
정작 대전에서 오가는 나 자신은 서울 올라가는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 (금전적인거 빼고)
그럴 만도 한 것이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데 버스로 2시간이 걸리지만,
버스가 출발하면 잠에 들고 버스가 도착하면 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체감시간은 10분정도 밖에 될질 않는다.
또 하나의 예로 병원 때문에 한달에 한번씩 서울로 올라가시는 어머니도 그런 말씀은 하셨으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단 한가지 중요한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간에 깨지 말아야 한다는 점.
중간에 잠에서 깨면 그보다 낭패인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책이나 들고 왔으면 다행이겠지만 아무것도 안들고 왔다면 재미 없는 고속도로 풍경을 하염없이 보고만 있어야 한다.
차내에 TV를 틀어주긴 하지만 지금이 1800년대도 아니고 소리 없이 움직이는 화면이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버스 안이 너무 추워서 깨고 말았다.
추워서 깬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깨어 있었고 한밤중에 커튼을 치는 등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추웠다.
잠은 달아난지 오래였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울 만한게 필요했다.
다행히 내 손에는 아직 다 읽지 않은 월간사진을 들려있었다.
옆자리에 사람도 없으니 버스 안 독서등을 켜고 잡지를 읽으면 충분히 시간을 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조도가 낮은지, 월간 사진 용지가 광택이 많아서 그런지 눈이 아파서 잡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절망.
버스 안 TV에서 개그콘서트를 해주고 있었다.
재수 없게 걸린게 예능 프로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자막을 안쓰는 개그 프로였다.
관객들은 웃고 있는데 내 주위에 있는 시청자들은 아무도 웃질 않았다.
시청자를 웃기질 못하는 개그맨이 어떻게 개그맨인가? -_ㅠ
유일하게 윤형빈이 "국민요정, 정경미 포에버~!"하는 소리만 들리진 않아도 들었다.

서울과 대전은 너무 멀다.
근데 다들 서울에 살아 서울로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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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9동 가는 버스

사는 이야기 2009. 11. 3. 02:19
버스가 막 서울대 정류소를 지나가던 때 였다.
시골(Non-서울)에서 올라온 촌놈에게 퇴근길의 무서움을 제대도 알려주는 만원 버스 안이었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여 라면이 꼬들꼬들 익을 듯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있을 때 두껑을 열게 만드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 고함은 서울대 앞에서 내리지 못한 한 할머니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달라는 절규 섞인 외침이었다.
순간 비난의 화살은 할머니를 내려주지 않은 버스 기사를 향했다.
그렇지만 그 화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에게도 되돌아 갔다.
할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버스벨을 누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버스 기사 아저씨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빨간 색 비상망치에 손을 가져다 대며 벨을 눌렀다고 소리를 지르셨지만 망치는 망치일분 벨이 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목소리는 망치로 내려치는 것처럼 거침 없어졌다.
자신은 운전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자기 아들도 운전할 줄 안다며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었다.
운전면허증이 있다는 것은 주민등록증 외에 또 다른 증이 있다는 것에 불구해진 현실에서,
할머니의 말은 "우리집에 소고기 한근 있다"정도밖에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덮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덮으려는 것을 들춰내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벨을 눌렀다고 착각한 할머니,
할머니를 내려주지 못한 버스 아저씨,
그리고 만원 버스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
그들 중 이 문제의 원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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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사는 이야기 2007. 6. 12. 02:23
매번 생각만 한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옴기지 못한다.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 아니였나?

오늘도 망상 속에서 아무것도 부여잡지 못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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