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집 아저씨

사는 이야기 2007. 9. 10. 22:24

EBS Space를 가기 위해 750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였다.
아침 시간이라 버스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가고 있는데 어떤 한 남자가 코팅된 A4용지를 나누어주었다.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다.

안산에 있는 사랑의 집에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원장님이 도망가셨습니다.
집이 있는 아이들은 집에 갔지만 가지못한 19명의 아이들은 xxx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지만 목사님 혼자만으로는 어려워서 이렇게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 후원을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전화번호 : 031-XXXX- XXXX

종이를 받아 읽었지만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저 전화번호로 어느 정도 되는 큰 돈을 후원해줘야 할듯 했다.

나누어 줬던 사람은 아무말 안하고 몇분이 있은 후 그 종이를 다시 걷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돈을 달라고도 안하고 전화번호만 적혀있기에 당황한 듯 했다.


그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또 다른 새로운 금요일,
좌절 아닌 좌절을 겪고 기숙사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탔다.
맨 뒷좌석이 우연히 자리가 나서 앉아있는데 저번과 같은 사람이 똑같이 A4용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도 받았지만 읽어보니 저번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나누어준 A4용지를 저번처럼 똑같이 걷어간 아저씨는 내 옆에 사람이 나가자 내 옆에 앉으셨다.

저번에 탄 버스도 750이었고 이번 버스도 750이었기 때문에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걸었다.

혹시 일주일 전 쯤에 750버스에 타시지 않았어요?

그 분은 19번 버스하고 다른 버스 2개 밖에 안탄다고 하며 750번 버스는 오늘이 처음이라고 하셨다.
혹시 그 분이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의문은 풀렸다.
왜 그러신지는 모르지만, 운동화는 불편해서 못신고 다니신다고 한다.
내가 저번 금요일날 그 사람이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았던 기억이 났다.
버스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계셨지만, 산에 올라갈때도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갈 정도로 운동화와 안맞는다고 하니
저번 주에 750 버스에서 본 분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글에 나온 안산에 있는 사랑의 집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제주도에 있는 사랑의 집에서 오신 분이라고 한다.
전국에 수 많은 사랑의 집이 있는 그 사람들이 똑같이 쓰인 글을 들고 버스나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구하는 듯 했다.
얼마 안가면 추석이라 집으로(제주도로) 돌아간다고 기뻐하셨는데 비행기 요금이 공짜라고 자랑하셨다.
덛붙여 내가 묻지도 않은 결혼이야기를 굳이 물어보시면서 일본인 부인 자랑까지.....  (나에게 청춘고백을...-_ㅜ)
그 분이 내릴 때 쯤되서 말씀해주셔서 알고 계셨는데 전화 후원 말고 천원, 오천원, 만원씩 기부 받는게 이 일의 주목적이라고 한다.
종이만 받고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알고도 행동으로 보이지 못할 나이기에 말았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사는 지역을 옴기면서 받은 충격 중 하나는 거리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전의 모습에 아니 대도시의 모습에 조금씩 적응해 갈수록
내 지갑 속에서 나가는 돈은 만원에서 오천원으로, 오천원에서 천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동전으로 점점 적어졌다.
누구의 말대로 내가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봉사는 도움이 되는 봉사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올 때의 생각과 정반대로 되어버린 봉사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말자'이다.
나 스스로 짜증을 내고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안하기로 했다.
어느 누군가가 나를 욕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를 도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도우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니.


ps. 아저씨로 태그를 치고 있는데 추천 태그로 아저씨 싫어?가 있었다;;;;; (야하다..)
ps2. 네이버 검색을 통한 안산 사랑의 집 정보1, 정보2
       제주도 사랑의 집에 계신 분이 오실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활동을 하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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