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운 겨울에...

생각하기 2009. 12. 19. 02:14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society/societyothers/view.html?photoid=2831&newsid=20091218181303753&fid=20091218181303753&lid=20091218180406176


정확히 제가 8살 때 처음으로 붕어빵을 먹어 보았습니다.
겨울이 되자 아파트 단지 앞에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가 나타났고 아버지가 귀가 하시면서 사오신 붕어빵이었죠.
그 때, 1개에 100원하는 붕어빵을 무려 1000원어치나 사오셨었어요.
저는 처음 먹어보는 붕어빵이라 '붕어빵이라는 것은 이런 맛이다'라는 것을 기억하기 급급했지만,
부모님께서 그 붕어빵을 칭찬하시던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반죽을 할 때 계란을 섞어서 다른 붕어빵과는 다르게 안과 밖에 모두 맛있다는 말씀을 하셨었죠.

사실 노점상하면 기억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원은 중학생 형, 누나들처럼 떡볶이 1인분을 시켜서 먹어보는 것이었고.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는 오뎅을 하나 먹을까, 떡볶이를 하나 먹을까 한참을 시절이었죠.)
초딩 6년차가 되었을 때, 친구들과 결성했던 '무얼회'의 모임 장소는 항상 떡볶이와 오뎅을 팔던 포장마차였죠.
(이때는 조금 형편이 나아져, 500원짜리 동전을 들고 김말이, 오뎅, 떡볶이 중 택 2를 했었습니다.)

노점상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저희를 손님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오락실에서 100원 넣고 한시간 넘게 게임을 하는 아이마냥, 오뎅 한두개 먹고는 오뎅 국물로 1시간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손해면 손해였지 절대 이득이 되는 손님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저희를 내쫒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반갑게 인사를 하면 반겨주시면 반겨주셨지.

사실 저희가 눈치보이게 오뎅 하나 먹고는 그곳에서 죽쳐있던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이라 그곳이 아니라 다른 곳은 춥거든요.
어른처럼 어린이들에게도 겨울이 추운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아, 철은 전도율이 높구나"라는 것을 매번 깨닫게 해주는 놀이터에 갈 수는 없었죠.
결국 결론은 오락실에 가서 놀던지, 아니면 불장난을 해서 놀이터를 따뜻하게 하던지 둘 중 하나였습니다......-ㅁ-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그 사실을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를 내쫒았다면 그 시간에 저희가 갈 곳은, 할 것은 위에서 말한 둘 중 하나 뿐이었죠.
덕분에 스트리터파이터2 클리어 같은 기록이 아닌 친구들과 많은 추억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순간 할말을 일었습니다.
저 노점상들이 불법인건 압니다.
떡볶이 1인분 먹는 것이 소원인 나이는 훨씬 지났으니까요.


오늘 저기서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에요.

"여러분들이 길가다 먹은 오뎅, 떡볶이, 붕어빵들의 대부분은 불법이었습니다.
 구청에서 허가 받은 디자인으로 허가 받은 장소에서 먹을 것을 파는 가게들만이 합법적인 가게입니다.
 불법을 없애고 법치를 살려야합니다.
 다시는 이런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모두 철거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길가다가 이런 노점상들에서 음식을 사먹지 마세요.
 이런 행위는 불법 노점상을 부축이는 주된 요인입니다.
 더 이상 이런 불법에 동조하지 마세요."

구구절절 올바른 말이지만, 이런 옳은 말에도 트집을 잡는 사람이 항상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나요?"

"그건 저희도 모르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있으니,
 저희가 이리가라, 저리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추운 겨울날, 저 아주머니는 내일 어디로 가게 될까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노점상이 있었던 홍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가게 될까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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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회

생각하기 2007. 5. 29. 23:02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재미있던 때는 초등학교 5, 6학년이였다.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경시대회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추억을 남겼었다.
특히, 6학년 때 몇몇 친구들과 결성했던 '무얼회'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경시대회 준비반이라고는 했지만 선생님께서 공부를 원하는 학생은 모두 받아주어 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한학년에 6반이 있는 우리 학년에서 30명정도 되는 인원이 경시대회 준비반 인원이었을 정도로 많았다.
공부하는 반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정해진 수업시간에 정해진 친구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닌 방과후에 남아서 다른 반의 여러 친구들과 논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 이었다.
이 준비반에서 같이 어울려다니는 친구 몇명이 있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고(나도 무척 좋아했지만)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한 친구가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모임의 이름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뜻을 품고 있는 무얼회로 정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주로 하는 활동은 경시대회반이 끝나고 학교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오뎅 또는 떡복이 또는 김말이는 먹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초등학생들에게 200원밖에 안하는 오뎅을 배불리 먹는 것은 사치였다.
매일 매일 5~7명정도 되는 인원이 우루루 몰려가 각자 200~500원어치씩 밖에 사 먹을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돈을 안내도 되는 오뎅 국물을 무한대로 떠먹는 것이 우리가 배를 채우는 방법이었다.
비록 매일매일 배불리 먹지는 못했지만 정말 즐거웠고 정말 맛있게 먹었던 같다.

배고픈 배를 어느 정도 채우면 다음에 하는 일은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었다.
우리가 노는 놀이터는 예전 내가 살던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였다.
왜 그 포장마차가 정해졌고 노는 놀이터가 우리 아파트 놀이터가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집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포장마차였고 놀이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 시간이 30분이나 길어지는 친구들이 매일매일 항상 함께했다. (나는 귀가시간이 1분...)

어떤 것이 우리가 먹을 것을 먹으러 가고 놀이터에서 놀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가 초등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은 지나갔다.
그리고 무얼회는 아쉬운 끝맺음과 함께 해체되었다.

5년동안 속마음도 전하지 못한체 끝나버린 나의 첫사랑보다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경시대회 준비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우리의 무얼회는 그 해 여름과 함께 경시대회 준비반의 변화와 함께 해체되었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준비했던 경시대회를 이제 대표로 확정된 6명만이 공부를 하도록 준비반이 바뀌었고,
남게 된 사람과 떠나야 하는 사람이 나뉘어져 사실상 무얼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시대회 준비반 마지막 날이 우리 무얼회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무얼회의 마지막날도 특별한 거 없이 평소처럼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주머니에 돈을 두둑하게 챙겨갔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포장마차에 가서 오뎅과 김말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국물로 배를 채우고
우리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놀던 놀이터로 갔다.
하늘이 우리의 마지막을 시기했던 것인지 이상하게 날씨가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불가능이 되어버렸고 그래도 마지막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집으로 갔다.
그러나 벌써 해가 떨어졌고 8시가 넘어버렸기에 우리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 걱정을 하셨고 집에서 노는 것을 허가 받지 못했다.
무얼회는 그렇게 아쉬운 끝맺음과 함께 끝나버렸다.
 .
 .
 .
유치원에서 진학하면서 초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유치원의 친구들과 다 다른반이 되었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친하던 친구들과 다른 학교에 배정받게 되었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나 혼자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학교 선배와 함께 단 둘이 들어가게 되었다.

어제 싸이를 돌아다니면서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같이 무얼회였고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해던 친구의 싸이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비록 다른 학교에 가고 나이가 먹으면서 10년이 가까워지도록 연락 한번 못해본 친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여름에 남겼던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추억은 시간을 먹고 자라며, 그렇게 자란 추억은 다시 만났을 때 우리를 더 즐겁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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