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사는 이야기 2009. 5. 4. 22:41

기숙사 방 안에 앉아 있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한손에 물병을 들고서는 평소 학교에 나갈때 하던대로 방문을 잠그고는 문을 닫았다.

'아뿔싸, X됐다.....'

나는 속옷차림에 신발을 신고는 망연자실하게 방문을 바라보았다.
열쇠는 당연히 방안에 있었다.
기숙사 방문을 열기 위해서는 새벽 몇시에 돌아올지 모르는 룸메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속옷만 입고 기숙사 사감실까지 미친듯이 뛰는 방법도 있었지만,
카드키도 없는 마당에 잘못 나갔다가 영영 기숙사 안으로 못 들어올 수 있었기에 무리였다.

세탁실에 말려져 있는 옷들을 입고 나가볼까? 말까? 고민하던 찰라,
3층 엘레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릴 수 있다면 메이데이를 치면 30분정도 떨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럭키가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사감 선생님이었다.
옆방에 어떤 사람이 문이 잠겨서 마스터키를 가지고 문을 열어주러 오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나는 기숙사 방 밖으로 의도치않게 가출한지 5분만에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가출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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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의 샘물

생각하기 2008. 1. 19. 14:08
   이곳의 샤워장은 생각보다 먼곳에 있다. 옷을 차려 입고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올라야만 샤워장이 있는 헬스장에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서 샤워를 하는 시간은 상당히 길다. 보통 30분 이상을 샤워실에서 보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곳은 목욕탕이 아니라 샤워실이다. 벽에 붙은 녀석 하나와 그렇지 않은 녀석, 샤워기 2개만 있는 작은 샤워장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원래 샤워를 오래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낙하하는 물 속에서 나는 가만히 서 있을 때가 많기에 남들보다 샤워를 오래하는 편이다. 그러나 평소와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서 큰 녀석이 한바퀴 돌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샤워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된 것은 내가 이곳의 샤워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이상한 기분 때문 일 것이다. 그 기분은 7살 때 처음 느낀 '우울함'이라는 기분이다.

   이유를 모르게 이곳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를 할때마다 '하나, 둘 셋' 주제가가 귓가에 멤돌며 그 때의 기분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나의 부모님은 맛벌이였기에 아침 일찍 출근을 하셔야 했다. 다행이도 가까운 곳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고 매일 아침마다 나와 동생을 위해 오셨기에 홀로 남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깨어나는 시각은 항상 부모님이 집을 나가는 시각이었고 깨어나자마자 나는 부모님에게 버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 쯤, 내가 싫어하게된 '하나, 둘, 셋' 주제가가 TV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곧 학교(병설유치원)에 가야하고 저녁이 되어 만화를 볼 시간이 되면 그 분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매일 아침마다 우울함을 맛보아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치원에 도착한 후에도 1~2시간 정도는 패닉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왜인지 모르게 샤워를 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때의 기분 (기억으로써는 슬프진 않다)이 떠올라 한참동안 가만히 서서 혹은 바닥에 앉아서 비와 같은 물을 맞고 있게 된다. 그렇게 나타난 슬픈 그 녀석은 내가 샤워장을 간신히 박차고 나와 내 폐속으로 차디찬 공기가 들어올 때 비로써 사라진다.
   이곳에서만 매일 느끼는 이 기분, 혹시 이곳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열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열쇠는 내 속에 내제된 트라우마, 즉 우울함의 깊은 샘물 속으로 인도하는 문의 열쇠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열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발견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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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곤 하지만, 사실 내일 아침이 조금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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