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Element 2010. 3.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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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2권을 다 읽은지 어언 1년이 지난 시점에 미학 오디세이 3권을 읽기 시작했다. 3권은 1권과 2권이 나온지 10년이 지난 후, 따로 나온 책이라 사실 미학 오디세이 별책으로 여겨야 할만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에셔와 마그리트라는 두 인물로 풀어갔던 1,2권에 비해 피라네시라는 인물은 많이 약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앞에 두 인물과는 다르게 그림 속에 담겨진 모순을 잘 보이지 않게 숨겨놓아서 그걸 찾기가 힘들었고, 더군다나 판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왜 피라네시를 택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책의 전반적인 흥미를 반감시켰다는 데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책의 흥미진진함은 앞의 두 권에 비해 떨어지지만 말솜씨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을 여러가지 그림과 설명을 통해 풀어냈기에 완벽히 이해는 못해도 읽을 당시 고개를 끄떡이게는 된다. "시뮬라크르와 스뮬라시옹"에서 나오는 현실과 가상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이 현실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인식하고 재인식하게 하는 것임을 이야기 해준다. 가상이 현실을 뒤업고 가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결국 매트릭스를 알면서도 매트릭스 속에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다시 한번 인지해준다. 네오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보는 순간 또 다른 매트릭스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플라톤 : 그럼 내 말이 맞지 않나. 우리가 눈에 보는 현실은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
디오게 : 그렇게 되나?
플라톤 : 그게 삶이지. 언젠가는 참된 세계에서 깨어나기를 꿈꾸며 사는 것.......
디오게 : 하지만 그 세계도 또 다른 꿈일터. 그냥 거대한 우주의 바퀴를 굴리며 꿈속에서 함께 놀지 않으려나?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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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12시간의 기록

사는 이야기 2008. 6. 14. 20:07

오후 6시


   광화문에 처음 도착한 시각은 6월 10일 오후 6시쯤. 시청역에서 나오는 입구부터 역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붐벼댔다. 시청광장에서는 반촛불집회 단체에서 기도회를 열고 있었다. 전경들과 경찰들은 촛불집회단체들과 반촛불집회단체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인간띠를 만들어 그 두 단체들을 분리해두었다. 기도회에 참가한 분들을 보니 나이드신 노인분들이 많이 보였다.
   한쪽에서는 촛불집회 단체들에서 초와 피켓을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여고생들은 시청광장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종이컵에 초를 꽂아 나누어주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고생들이 광우병소고기 반대 뱃지를 팔고 있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부스도 보였고, 얼마전 신문 1면에 광고를 실었던 miclub의 부스도 보였다. 어느 단체에서 500ml짜리 생수를 나누어 주어서 하나 들고 왔다. 정부에서 배후를 논하는 것은 값비싼 초와 종이컵을 무료로 나누어 주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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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시청광장은 반촛불집회 단체에서 행사를 했기에 대책위원회에서는 촛불문화제 장소를 시청광장에서 청계천광장 앞으로 옴겼다. 나도 그 안내에 따라 시청광장에서 청계천광장으로 이동했다. 청계천 광장에 도착하니 세종로 이순신 장군상 앞에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벽이 눈에 들어왔다.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플랜카드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새 랜드마크(?) 앞에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2층짜리 컨테이너박스는 자유게시판이라도 된듯, 정부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글과 그림들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나도 그 곳에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을 뽑아 붙여두고 왔다.
   한쪽에서는 통합민주당에서 손학규 당대표를 비롯한 많은 국회의원들이 와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국회에서 제대로된 장관해임안도 처리못한 통합민주당이라 그런지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인 부유층을 대변하기라도 하지, 통합민주당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대체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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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12시쯤에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슬슬 허기가 졌다. 시청주변에는 식당도 별로 없고 있더라도 비싸고, 결정적으로 혼자가서 밥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밥을 먹을 곳을 찾으려고 고민을 하던 중, 4년전에 블로거 형, 누나들과 첫 만남을 한 메밀식당이 떠올랐다. 비록 4년전에 한번 가보고 처음 가보는 것이었지만, 덕수궁 돌담길 옆에 있는 것을 기억하고는 어렵지 않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손님이 너무 나도 많아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수고를 줄여드리고자, 비빔메밀을 시켜먹었다. 먹어 본 결과, 내가 좋아하는 비빔면의 맛의 목적지가 바로이 곳의 비빔메밀 맛인것 같다.
   시청 광장에서 노회찬의원님과 심상정의원님이 계셔서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심상정의원님의 명함을 받고 놀랐는데, 명함을 만져보니 오돌도돌한 돌기가 있었다. 확인해보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새겨져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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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청계광장 앞 도로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촛불문화제는 6.10항쟁 21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행사와 어제 고인이 되신 고 이병렬씨를 추모하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고 이병렬씨의 조카인 여중생이 나와 울먹이면서 하는 발언이 내 가슴을 울렸고 갑자기 양희은씨가 나와 아침이슬을 불러주는 바람에 너무나도 좋았다. 그 곳에 있었던 12시간동안 그렇게 많이 듣고 불렀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듣고 있을 만큼 아침이슬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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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사람이 정말 많았다. 도로는 앉은 사람으로 가득찼고 인도는 오가는 사람들 덕분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컨테이너로 막힌 이순신장군상부터 시작해서 청계광장, 시청광장을 지나 남대문까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촛불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옆쪽으로도 서대문쪽과 명동쪽으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어서 확실히 몇십만명은 되는것 같다. 내가 비록 2002년에 이곳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도 이쪽 거리가 가득찼다고 몇백만명까지 말했었는데, 오늘 이 거리가 그때처럼 빼곡히 찼는데 설마 몇십만명도 안될리 없다. 인산인해라는 말은 바로 이때 써야 할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행진을 하기위해 사람들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행진을 하려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이번 촛불시위에 오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이 바로 행진이었다. 무리하게 청와대로 행진을 하려다가 폭력시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사이에서는 비폭력이라는 확고한 공통 생각이 있었고 또한 행진 자체의 분위기도 무겁지 않고 축제때의 행진처럼 한것 즐거웠다. (몰랐는데, 행진을 3군데 방향으로 했다고 한다. 내 쪽은 사직동방향이었다)


오후 11시

   몇몇 단체들은 기발한 준비들로 행진내내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사물놀이 풍물패는 사물의 소리로 행진을 흥겹게 이끌었고 태견 단체에서는 거리에서 시범 태견을 보여 환호성을 만들어냈다. 빨간색으로 빛나는 탬버린을 가져온 단체에서는 수십게의 탬버린을 흥겹게 쳤고 어느 단체에서는 라틴 분위기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댄스를 추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비록 우리가 국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정부에게 항의를 하러 이곳에 모였지만, 우리는 그러한 행위자체도 놀이로 승화시켰다. 정부에서 만들어주는, 돈으로 행사를 채워넣는 축제가 아닌 시민스스로가 직접 만들고 즐기는 축제가 된 것이다.


다음날 오전 12시

   지난 번에도 독립문까지 왔다가 고가도로까지 전경버스로 막아버린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도 저번처럼 철통수비로 독립문부분 고가도로를 막고 있었다. 제대로된 지도부가 없는 시위대였기에, 행진이 막히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고 지하철도 거의 끊길시간이 되었기에 돌아가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독립문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그 쪽으로 가면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는 해프닝 끝에 다시 시민들이 있는 광화문 앞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경찰청 앞에서는 한참동안 "어청수는 물러가라"를 외쳤고 중앙일보에서는 "중앙일보 찌라시" 그리고 "불꺼라"를 외쳤다. 서울역 그리고 남대문을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임을 위한 행진곡", "아리랑", "광야에서" 그리고 "아침이슬"이 계속 매들리로 불려졌다. 너무 걸었다...-_ㅠ


다음날 오전 1시

   거리에는 나머지 2방향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준비된 행사가 없었다. 이후의 흐름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졌다. 촛불문화제를 했던 무대에서 자유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길거리에 앉아 같이 온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마시며 토론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디서 공수해 온 대형 스티로폼를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넘으려는 사람들, 이렇게 3분류였다. 나는 자유발언에는 관심이 없었고 같이 온 사람들도 없었기에 뭔가 활발한 세번째 부류 속에 있었다.
   일민 미술관 앞에 쌓여있던 스티로폼은 수 많은 시민들에 의해 옴겨졌다. 시티로폼은 많은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걱정인 폭력시위로의 변질 때문에 컨테이너 벽 조금 앞쪽에 쌓여졌다. 빨간 조끼를 입은 인권운동가들의 주도하에 스티로폼은 명박산성을 넘는 용도가 아닌 임시 연단용으로 쌓아졌다. 쌓여진 연단에서는 자유발언이 진행되었고 그 뒤쪽에서는 스티로폼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인권운동가들과 시민들과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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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2시

   사실 나는 이때 이런 다툼이 있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서 가져온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그 앞에서 디씨 음식갤러리에서 공수해준 공짜 김밥을 나눠줘서 김밥을 먹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끄럽고 왁자지끌한 곳에서 책 읽고도 한때였다. 혼자 온것에 대한 후회가 들기 시작하던 그 순간, 내 눈 앞에 진중권 교수님과 칼라TV Staff들이 지나갔다. 머리 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생각, '이 사람들 따라 다니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그리고는 진중권 교수님과 칼라TV를 따라다녔다.
   칼라TV 촬영팀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명박산성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진중권 교수님은 스티로폼을 컨테이너 벽으로 쌓자는 사람들과 그냥 단상으로 놓자고 하는 인권단체사람들을 인터뷰를 하였다. 나도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스티로폼 단상 뒤쪽으로 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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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3시

   어떻게 생각하면 지루하다고 생각 할 정도로 긴 토론과 다툼이 이어졌다. 나는 평화시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고 스티로폼도 일민미술관 옆에서 그냥 들고 온것이라고 알고 있어서 컨테이너벽을 넘지 않는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스티로폼이 원래 있던게 아니라 컨테이너벽을 넘기 위해서 일부로 사온거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 있는 스티로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권단체에서 시티로폼의 사용용도를 마음대로 정해서 불만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느 쪽이 더 옳은 마음속 갈등이 생겼다. 넘는다면, 폭력시위나 시민이 다칠 위험이 생길것이고, 그냥 있자면 지난 번 6월 6일때처럼 아무런 진전이 없어서 시민들이 하나둘씩 지쳐나갈께 뻔히 보였다.
   중고생들은 대부분 시티로폼을 쌓아 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을 수록 예전에 힘겹게 시위했던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지 컨테이너벽을 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셨다. 다른 시민들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어느 한쪽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늘어지는 동안 스티로폼 뒤쪽에서는 언변이 높아졌고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했다. 그 주변에 있는 만명정도의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기도 힘들었고 그렇게 의견은 모아지지 않자 국회의원들을 보는 것처럼 시민들사이에서 몸싸움도 일어났다. 단상위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밑에 있는 스티로폼을 빼내가는 등 안하무인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서로를 프락치로 모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의견을 모으고 정리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상을 인권단체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주도를 했지만, 그 쪽에서는 내부적으로 컨테이너박스를 넘지 말자는 의견으로 정했는지 반대쪽 의견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민주적으로 처리할 문제를 민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시민들의 박수소리로 의견을 판단한다고 물었고 내가 듣기로는 분명 컨테이너를 넘자는 의견이 넘지 말자는 의견보다 많았다. 그런데 의견이 반반이라는 이야기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된다는 말로 현상황의 유지를 계속 주장했다. 인권을 중시한다면, 컨테이너벽을 넘자는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되지 않을까? 만약, 자신들이 생각하는 의견이 옳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면, 반대쪽 대표와 함께 단상 위에서 둘이 토론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인권단체분들과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단상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이들을 통해 보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암담했다. 칼라TV의 진중권교수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중재도 하려고 하였지만, 그는 오늘 언론인으로 온것이고 교수인 자신이 중심이 된다면 이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것이 분명하기에 거리를 두고 행동했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해 줄 사람도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다. 이건 우리들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다음날 오전 4시

   한가지 다행인 점은 비록 우리가 언변을 높이고 다툼이 있었지만 돌발행동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려는 사람은 양쪽 모두 배척했다는 사실이다. 저런 사람들이 나타날때마다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그 사람을 그 장소에서 끌어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또하나의 왕이 아니었다. 양쪽 모두 단상으로 올라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행동은 반감만 느끼게 했다. 우리는 또 한명의 왕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가 단상에 올라 왕이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랬다. 왕이 되려는 사람들은 매번 내려질 뿐이고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뿐이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있는 바닥에서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볼 때 진심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기나긴 다툼 끝에 명박산성 위에 상징적으로 몇명의 깃발을 든 사람들을 올리기로 합의가 내려졌다. 그렇게 소수의 사람만 올라간다면 폭력시위나 부상의 염려가 없을 것이고 벽을 넘었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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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5시

   가장 먼저 태극기를 든 사람이 올라갔다. 태극기가 명박산성 위에서 펄럭이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이어서 이번 시위에 참가한 대학교들과 여러단체들의 깃발이 올라갔다. 깃발 하나하나가 올라갈때마다 환호성을 보냈고 기쁨에 가득찼다.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비록 길다고 느낄만큼 긴 토론과 다툼이 있었지만 우리는 국회에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우리의 대의에 대한 합의를 보았고 그 목표를 이루었다. 내가 몇시간전 좌절했던 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란, 어떻게 보기엔 시간낭비처럼 보이고 쓸때없는 탁상공론처럼 보일때가 많다. 서로의 의견을 모아야 되고 소수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다수결이란 최후의 방법을 쓰긴 하지만 전체의 합의를 이루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똑똑한 소수의 사람들만 모아서 똑똑한 결론을 내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다른 방법들이 가지고 있는 않은 중요한 장점이 있다. 바로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독재를 감시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동물 사회에서 조차 없는 같은 종족사이에서의 핍박과 억압이 인간 사회에서는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 오마이뉴스 기사, 이명박에는 없는 것 여기에 있었다, 현장 11신~24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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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6시

   우리는 명박산성 위에 우리를 대표하는 태극기를 하나 꼳아두었다. 그것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준 권력은 바로 우리에게서, 즉 국민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상징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는 권한이 가장 강하다고 한들, 대통령이 국민의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누가 보기에는 하찮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몇십만명이나 모아놓고 태극기 하나밖에 못꼳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태극기에는 피와 땀을 흘린 긴 토론의 결과이자, 정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부가 대한민국민들의 말을 듣기를 바랄 뿐이다.
   매번 그렇듯, 새로운 해가 뜬 뒤에도 집회는 해산되지 않았다. 얼마 안있어 전경들이 강제해산을 시키고 다시 도로를 시민들에 품에서 빼았아, 자동차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지난 6월 6일에 해산되는 것을 보았지만, 겁만 주고 도로소통을 시켰기에 이번에 그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첫 지하철 그리고 첫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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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0일, 그것은 2002년 월드컵을 서울 광장에서 지켜보지 못한 나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축구라는 즐거움으로 모인 것이 아닌, 민주화라는 열망 하나로 모인 1987년 6월 서울의 이야기는 내가 그 때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게 해주었다. 비록 그 때 만큼은 아니겠지만 21주년이 되는 오늘, 그 날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래로부터의 정치, 이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한 참된 모습이 아닐까?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한사람, 한사람이 작지만 하나의 의견을 표할 수 있고 그것이 모여 한 나라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회,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학급회의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배운다. 꼭 빠지지 않는 중요한 차례 중에 건의사항이라는 순서가 있다. 이 순서는 각 부서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을 학생 아무나 건의할 수 있는 순서이다. 반이 너무 지저분 하다면, '다음 주는 대청소를 합시다'라는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장이 학생들이 내는 건의사항을 잘 실천시키느냐 마느냐일 것이다. 만약 잘 실천되지 않는다면, 분명 몇주 지나지 않아 건의사항은 있으나 마나한 순서로 전락할 것이고, 잘 실천된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난 40여일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반장에게 건의사항을 내놓았다. 안타깝게도 건의사항은 들어질 수도 있고 안들어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강제권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좋은 반장이라면 우리의 건의사항을 잘 듣고 실천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반장 투표에서 말한 그 말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반장에 대한 신뢰와 회의에 대한 열정, 모두 사라져 버릴것이다. 그리고는 학생들은 한가지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새 학년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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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인터뷰

생각하기 2007. 10. 7. 13:48
영원한 논객 '진중권' (2007-09-28 01:11:05)

출처 : Dcinside DC인터뷰(http://www.dcnews.in/etc_list.php?code=succeed&id=8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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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에 와서 진중권씨가 쓴 빨간 바이러스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다 (찾아보니 대학교 1학년 때).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에 커다란 영향을 준 책이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글을 정말 잘쓴다는 점이다.
   가끔 TV에서 하는 토론회를 보면(주제가 재밌거나 말을 잘하는 패널이 나오면 본다) 말을 정말 잘한다고 느끼는 세 명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이 진중권씨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명은 진중권씨 인터뷰에서 진중권씨가 언급한 유시민씨와 노회찬씨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도 아니고 말을 막히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계속하는 건 랩 배틀에서나)도 아니다. 주장하는 논리가 논리정연하다는 것이다. 그가 수 많은 디빠들에게 공격을 받고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디빠들이 논리를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인터뷰를 본 것 같다. 여러가지를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시 진중권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를 가슴에 한가득 품고.

ps.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본문 전체를 퍼왔는데, 다 지우고 링크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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