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 위대한 독재자

Element 2007. 4. 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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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 위대한 독재자

   내가 보았던 찰리 채플린의 4가지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예지력 때문일 것이다. 서커스와 황금광 시대에서는 무성영화의 개그를 보여주었고 모던 타임즈에서는 개그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위대한 독재자에서는 개그와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해는 1940년이다. 비록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찍은 영화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찍은 영화라고 말해도 믿어질 만큼 몇년 뒤 총검 아래 피로 덮어질 세계의 모습을 적날하게 예견하고 있다.

   주요 줄거리는 이러하다.(출처 : 네이버 영화)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토매니아(Tomania)국에 힌켈(Adenoid Hynkel: 찰리 채플린 분)이라는 독재자가 나타나 유태인을 탄압한다. 1차대전 후, 과거 경영하던 이발소를 다시 시작한 유태인(A Jewish Barber)은 유태인 탄압정책에 의해 돌격대원에게 잡히나, 전쟁시 구출해 주었던 슐츠 장교의 도움으로 무사히 풀려난다. 유태인 갑부가 힌켈의 대부 요청을 거절하자, 탄압의 도를 더하던 독재자는 이웃나라인 박테리아국의 독재자 나폴리니와 맺은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오스텔리히를 침략한다. 힌켈의 미움을 사 이발사와 함께 수용소로 보내진 슐츠는 군복을 훔쳐 달아난다. 때마침 이발사로 오인된 힌켈이 잡혀 들어가고, 힌켈을 대신하여 연단에 오른 이발사는 목청껏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호소한다.

   팔랑거리는 팔을 가진 나치의 심볼을 플러스 기호 2개로 바꾸는 센스와 히틀러를 힌켈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센스를 보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이 왜 토매니아인지는 잘 모르겠다). 힌켈은 독일(사실 독일이므로)을 지배하고 있는 독재자이다. 하지만 독재자 답지 않게 작은 키에 여러가지 소심한 면들과 광대 같이 우스꽝스러운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를 하는 다른 역인 이발사역은 힌켈과 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1차대전에서는 연막탄 속에 길을 읽어 전직 한가운데로 떨어지는가 하면, 그 후로도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나치당원들에게 덤비는 용기(?)를 보여준다.

   채플린이 1인 2역을 한 것처럼 힌켈과 이발사는 모습도 행동도 말투도 다 비슷하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은 한명은 독재자이고 한명은 평범한 소시민인 것이다. 독재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짓밟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발사는 모든 사람들의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 모던타임즈에서 가진자에 의한 자본주의의 부당함을 외쳤던 그가 이제는 독재자(가진자)에 의해 움직이는 파시즘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었다.
   찰리 채플린의 비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바로 힌켈과 같은 모습이던 이발사가 힌켈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은 승전 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미안합니다.
   저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남을 지배하는 통치자는 더욱 싫습니다.
   가능하면 보통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유대인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인간은 원래 평등합니다.
   불행보다 행복을 원합니다.
   서로 미워하지 않길 원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의 터전입니다
   우리의 삶은 자유롭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욕심이 양심을 짓밟아 미움의 벽을 쌓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명의 발달 속도는 소외 계급을, 경제성장은 빈곤계층을 만들었으며
   지식은 인간을 교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할 뿐 느낄 줄은 모릅니다.
   물질보다는 정신이, 지식보다는 진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비행기와 리디오는 거리와 시간을 단축시켜 지구를 한 마을로 만들었습니다.
   그 라디오를 통해 지금 내 목소리가 전 세계에 절망하는 남녀와
   굶주린 어린이, 고문 당하고 투옥되고 박해 받는 이에게 들릴 겁니다.

   그분들께 저는 호소합니다.
   절망하지 맙시다.
   우리가 겪는 불안과 공포는 전진을 두려워하는 자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독재자는 반드시 멸망하고 민중으로부터 뺏은 권력은 민중에게 돌려질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는 영원할 것입니다.

   군인이여 복종치 마십시오.
   독재자에게만은!
   그는 당신들을 조종합니다.
   행동, 생각, 느낌까지도 그는 당신을 개, 돼지로 여깁니다.
   기계인간에게 복종치 마십시오. 그는 몸도 마음도 기계입니다.
   당신은 기계도 돼지도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가슴엔 사랑이 넘칩니다.
   미워하지 맙시다!
   사랑에 굶주린 자만이 남을 미워합니다.

   군인들이여!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갑시다.
   누가복음 17장을 보십시오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아닌 가슴과 가슴이 서로 닿는 민중 안에 있습니다.
   기계를 만들고 행복도 만들 수 있습니다.
   민중은 세상을 자유롭고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힘을 쏟읍시다.
   모두 힘을 뭉쳐서 정의를 위해 싸웁시다.

   젊은이에겐 안정된 직장과 노인들에겐 복지시설을!
   이런 공약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전부 사기였습니다.
   정치가는 결코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않습니다.
   독재자는 그와 그 일당만이 자유롭습니다.
   이제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싸웁시다.
   자유를 위해 투쟁합시다! 국가간의 벽을 없앱시다.
   마음을 비우고 서로간의 미움을 버립시다.
   상식이 통하고 문명의 발전이
   행복을 창조하는 사회를 만듭시다.

   군인이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됩시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찰리 채플린의 진지한 모습이 이 일의 대한 중요성을 말해준다. 또한 독일의 폴란드 침공 전에 이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대단히 신기할 뿐이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비운의 명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러니~~)

Ps. 사실 작품의 내용이 이러하다 보니 독일에서 영화의 상영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히틀러 본인이 찰리 채플린의 팬이여서 몰래 작품을 들여와 2번정도 보았다고 한다.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Ps2. 시험기간동안 계속 안 써서 그런지 글 쓰는게 엄청나게 어렵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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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 서커스, 모던 타임즈, 황금광시대

Element 2007. 3. 1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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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 서커스, 모던 타임즈, 황금광시대

   내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집에 갔다가 우연히 '서커스'라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부터였다. 웃기게 생긴 복장을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던 우울함을 비슷함을 찾을 수 있었다. 서커스의 광대들이 눈물을 흘리는 표정으로 얼굴에 화장을 한 것처럼, 찰리 채플린의 복장이나 행동도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현대인들의 표상인 것이다.

   나는 찰리 채플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처럼 내 속에 있던 슬픔을 그와 같은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므로써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허름해보이는 복장도 사실 정장은 정장이었기에 경제적 부담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그의 작품을 하나둘씩 보기 시작했다.
   일단 학교 멀티미디어실에 DVD 여러장으로 된 찰리채플린 단편영화 모음집이 있었다. 그 중 재미있어 보이는 것 하나를 빌려서 보았고 그와 동시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는 3가지 영화, 모던 타임즈(1936년), 황금광시대(1925년) 그리고 위대한 독재자(1940년)을 찾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이 배우로써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게된 계기인 '황금광시대'는 찰리 채플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은 '서커스'와 비슷한데, 우연한 계기로 황금을 찾아 떠나게 되고 눈 속에 조난이 되고 사랑에도 실패하는 좌절을 겪지만, 결국에는 찰리 채플린의 의도치 않은 행동 덕분에 행운을 얻게 되어 돈과 사랑 2가지를 모두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빛이 나는 것은 역시 찰리 채플린의 몸 연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몸연기의 핵심은 과장된과 어뚱함이 섞인 행동들이다. 사실 어뚱하다고 말은 하지만, 술에 취했을 때 나오는 행동을 생각하면 공감이 되는 점이 많이 있다. 사회가 나에게 준, 혹은 내가 사회에 가지고 있는 제약을 벗어나 무인도에 사는 사람처럼 살아왔다면 저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될 수 없는 현실이 있기에 우리가 그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잇는 것이다.
   사실 80년이 넘게 지난 영화가 지금에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실로 놀라울 수 밖에 없다. 뒤에 나오는 해설들에 의하면 찰리 채플린은 대본을 가지지도 않고 촬영장에서 매번 생각나는 것을 즉흥적으로 행동해서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실로 천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의 재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찰리 채플린이 배우 겸 감독으로 성공하고 영화계에 길이 남게 된 것은 뒤에 두 작품인 모던 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의 영향이 크다. 산업 혁명 이후 기계화 되고 반복화 된 삶의 모습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모던 타임즈이다.
   모던 타임즈에서의 인간은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한 부품에 불과하지 않다. 기계의 각 기어들이 정해진 속도로 정해진 행동을 계속 하듯이, 인간도 기계가 정해준 속도록 정해진 행동을 반복한다. 또한 기업의 이익이라는 기업의 최우선 과제에 맞물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한계치로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억압한다. 모던 타임즈 속의 사람들에게 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기계의 속도에 맞추어서 행동할 뿐이며 자신의 일을 대체할 다음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일을 잠시 멈출 자유도 없다. 그들에게 올수 있는 유일한 여유는 자신이 다니는 기업이 파업을 해서 공장을 완전히 멈출 때 뿐이다.
   모던 타임즈에서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찰리 채플린은 우연히 파업의 선봉장이 된다. 나는 이 장면이 찰리 채플린 영화의 개그 센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벌어진 일은 눈사태가 나듯 점점 더 부풀어지고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갈수록 일이 커지는 모습에 관객들이 재미는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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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깃발을 들게된 찰리 채플린과 뒤에 보이는 파업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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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합류한 찰리 채플린은 파업대를 이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개그맨이 되었다. 다들 마음속에 우울함과 슬픔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는 웃는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기에 모두 웃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웃음을 짓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웃음일까? 자신의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불쌍한 현대인,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 나라고 생각하니 슬프기만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찰리 채플린처럼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 세상이 즐거운 것일까?

Ps. 위대한 독재자는 다 보지 못해서 옴겨 적지 못했다.
     초반부분을 보기 시작했는데 내용도 재미있고 시대적 상황도 재미있는거 같아서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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