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사는 이야기 2009. 8. 4. 22:33
내가 극작가였다면 몇시간만에 작품 하나를 썼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지하목욕탕,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바로 들어가면 될줄 알았는데 남탕은 한층 더 지하에 있었다. 신발장이 다로 있는 것을 모르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구두를 닦던 형은 몹시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뭐병, 여기서 뭐하나'가 아니라 집에 온 손님에게 밥 한끼 대접해주지 못한 것처럼.

목욕탕을 언제가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요즘 목욕비가 보통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목욕비 3천원이 싼 금액이라는 것은 눈감고도 맞출 수 있다. 만원을 향해 달려가는 여느 목욕탕과는 사뭇 다른 이 작은 목욕탕에는 삶이 살아숨쉰다. 어중이 떠중이 손님이 아닌 매일 같이 오는 손님들로 가득차기에 정겨운 모습이 매시간 벌어진다.

리모콘이 작동하지 않는 다는 손님에게 왜 채널도 못 바꾸냐고 구박했지만 자신이 했을 때도 작동하지 않아 같이 고민하는 모습, 오늘 처음 온 손님에게 자주 오는 분 아니냐며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동생에게 다음에 꼭 다시 오라며 인사해주는 모습은 크기와 시설로만 홍보하는 요즘 대형목욕탕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지금은 목욕탕이라는 배경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드라마 '목욕탕집 사람들'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니였을까.

서울에 올라가서 목욕탕집 갈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가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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