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론

생각하기 2010. 4. 5. 07:59

우리 할머니는 걱정이 많으시다.
부모님이 퇴근을 조금만 늦게 해도 혹시 교통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 하시고,
손자, 손녀들 중 누구라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몇날 몇일 교회로 기도를 하러 나가신다.
할머니의 걱정은 끊임없이 이어져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다.

혹시나 할머니가 걱정을 하실까봐 심각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들은 사전에 말씀하시지 않는다.
일의 결과가 잘 나와서 잘 풀렸을 경우 그 때 그 일을 알리시고,
만약 일이 잘 안되었을 경우는 혹시 걱정을 하시지 않을까해서 할머니에게 일 자체를 알리지 않으신다.
나는 이게 단지 걱정이 많은 할머니에게만 해당되는 일인줄 알았다.
그러나 예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혹시 공부에 방해될까봐 미국에서 유학중인 셋째 이모에게 알리지 않은 일,
그리고 걱정할까봐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것을 한달 가까이 군대에 있는 동생에게 알리지 않을 일 등을 보건데,
우리 부모님은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분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걱정이 많은 할머니,
그런 영향 때문에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부모님,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부모님을 둔 나는 어떠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할머니처럼 걱정이 많은 편이다.

종교가 없어서 할머니처럼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걱정이 하나 생기면,
금새 없어지질 않고 내 몸에 찰삭 붙어서 내가 잊어버릴 때까지 나를 계속 괴롭힌다.
사실 대부분의 걱정이 별일 아니거나 큰일이어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다. (아마 본능이겠지)

이런 나를 보면서,
걱정이 많은 부모를 두게 될 나의 자식들은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걱정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소심을 예상을 해본다.

혹시 걱정할까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알리지 않을테니 그 전에 눈치 빠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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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가 좋았지

사는 이야기 2010. 1. 31. 02:39
할머니께서 문뜩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희들 어렸을 때가 재밌고 좋았지. 그 때가 그립구나"
나도 그렇다.
할머니가 20년 젊으셨던 그 때가 그립다.
그 때도 나에게 할머니이셨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머니로 불렸었던 그 때가 그립다.
햇살이 가득하던 여름, 거실 바닥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누워있으면 세상의 무엇보다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아버지만큼 무섭던 때가 그립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
세상의 모든 자식들처럼, 후회로 가득차게 될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그 일을 받아들이게 될까?
"그 때가 그립다"
이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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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9동 가는 버스

사는 이야기 2009. 11. 3. 02:19
버스가 막 서울대 정류소를 지나가던 때 였다.
시골(Non-서울)에서 올라온 촌놈에게 퇴근길의 무서움을 제대도 알려주는 만원 버스 안이었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여 라면이 꼬들꼬들 익을 듯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있을 때 두껑을 열게 만드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 고함은 서울대 앞에서 내리지 못한 한 할머니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달라는 절규 섞인 외침이었다.
순간 비난의 화살은 할머니를 내려주지 않은 버스 기사를 향했다.
그렇지만 그 화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에게도 되돌아 갔다.
할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버스벨을 누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버스 기사 아저씨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빨간 색 비상망치에 손을 가져다 대며 벨을 눌렀다고 소리를 지르셨지만 망치는 망치일분 벨이 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목소리는 망치로 내려치는 것처럼 거침 없어졌다.
자신은 운전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자기 아들도 운전할 줄 안다며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었다.
운전면허증이 있다는 것은 주민등록증 외에 또 다른 증이 있다는 것에 불구해진 현실에서,
할머니의 말은 "우리집에 소고기 한근 있다"정도밖에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덮으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덮으려는 것을 들춰내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벨을 눌렀다고 착각한 할머니,
할머니를 내려주지 못한 버스 아저씨,
그리고 만원 버스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
그들 중 이 문제의 원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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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

사는 이야기 2009. 8. 5. 22:30

선생님과 간단한 출사를 마치고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을 때 였다.
서울의 밝은 불빛이 말해주는 서울의 그림자, 어느 할머니가 껌을 팔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몰려온 슬픔에 당혹스러웠지만 할머니는 당연하게도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왔다갔다 거렸다.

내 자리 뒷쪽 테이블에는 방금 전에 들어온 대학생들 열댓명이 앉아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걔들은 껌을 사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에 이런 말로 화답했다.

"내일 모래 논산으로 오시면 사드릴께요"

걔들 부모는 아들에게 껌을 팔기 위해 내일 모래 논산에 따라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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