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생각하기 2008. 12. 31. 01:22

   날씨는 지금도 차다. 새해에 대한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TV 퀴즈쇼에 나온 어느 사람처럼 모두들 내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 속이 뜨거워진다. 좀 전부터 안보이기 시작한 해는 어느 덧 어둠에게 대부분의 자리를 건내준 것 같았다. 비록 2008년 마지막에도 어김없이 빛나는 검은 상자들 덕분에 그 느낌은 덜할지라도.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점점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가득한 이곳에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생방송이 코 앞으로 다가온 행사준비요원들은 실수라도 할까봐 바쁘게 이곳저곳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무리들, 신년을 맞이하는 사람들 답지 않게 무거운 표정을 한 이들은 마지막날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무대 위에 어떤 사람이 올라와 생방송의 시작을 알려왔다. 곧이어 환하게 빛나는 무대에 사회자들이 들어왔고 어둡던 객석 한쪽에서는 작은 불빛 하나가 올라왔다. 방송의 시작을 다 같이 환호하기라도 한듯 객석 곳곳에서는 하나둘식 작은 불빛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부분부분 전혀 없는 부분도 있었고 무대 위 조명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불빛이었기에 어두움을 덥을 순 없었지만 그 숫자만큼은 엄청났다. 내가 방송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맨이었다면 몇명의 사람들만이 홀로 서있는 무대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이 광경을 찍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마음을 다잡고 진행을 하려던 사회자도 지금은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 처음엔 자신의 그들이 낸 빛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국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위치라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황은 기묘하게 진행되었다. 하나처럼 보였던 사람들은 방향성이 없었고 방금 말한 것처럼 사회자도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마치 다같이 빨간양말을 걸어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같아 보였다. 모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 담긴 소망은 제각각인 것 같았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후에 상황은 너무나도 꿈만 같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잠자리에 일어나서도 한동안 머리 속에서 맴도는 생생한 꿈들처럼 한편으로 비현실적이여서 현실적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당신도 곧 나와 같은 꿈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테니.이곳으로 놀러온 사람들도,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어두워서가 아니라 어두움에도 불을 켤수 없을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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