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네

사는 이야기 2009. 8. 26. 22:49
학교 뒤에 우리가 부엌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동네가 하나 있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도 있고 주변에 여러 연구소와 회사들이 있어서 인지 가게의 대부분이 음식점인 곳이다.
한적한 대전 외곽에 위치해있지만 이곳의 음식점들은 심한 경쟁 속에 있다.
1년에 전체 음식점 중 1/3이 바뀔 정도로 개업과 폐업이 자주 생기는 곳이다.

이제는 제대를 몇달 앞둔 승건이와 예전에 룸메를 할 때 자주 가던 식당이 하나 있었다.
돈이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식은 너무 맛이 없어서 좀처럼 먹지 않았었다.
학식을 가지 않는다면 택할 수 있는 2가지 경우가 존재했다.
시켜서 먹는 경우와 앞에서 말한 뒷동네에 나가서 먹는 경우.
(사실 시켜서 먹는 경우도 뒷동네에 있는 음식점에 시켜 먹는 것이기에 뒷동네로 통일해도 될것이다.)

어쟀든 나가서 먹는 경우 가장 적게 잡는 경우는 김밥천국에 가서 3000원짜리 밥을 먹는 것이었고,
그나마 외식이라고 말을 붙을 수 있는 식당에서 먹으려면 최소 5000원,
호주산이든 미국산이든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최소 10000원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러한 돈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식당 하나를 찾게 되었다.
일인분에 7천원인가 8천원인가 하는 삽겹살을 파는 고기집이었지만,
특별메뉴로 돼지갈비 1인분을 4천원에 파는 곳이었다.
삼겹살을 파는 고급 고기집에 가도 잘 안올려주는 숯을 일인분에 4천원짜리 하는 우리에게 올려주었다.
거기에다가 파저리며 꿀호박이며 여러가지 반찬들도 아낌없이 놔주는 모습에 만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2인분을 시키고 밥 2공기를 시키면 단돈 5천원에 고기도 먹고 된장찌게도 먹을 수 있는 천국이었던 것이다.

이 좋은 식당에도 한가지 약점이 있었다.
가게는 여느 식당들처럼 넓었지만 장사가 잘 안되서 그런지 여자 사장님 혼자서 운영을 하고 계셨다.
손님이 몰릴 경우에는 다른 손님들이 남기고간 음식들을 치우지도 못하고 새로온 손님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가격이 싸더라도 우리 같이 가격만 보고 오는 손님이 주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1인 식당으로 운영하던 이 가게는 망하였고 우리가 된장찌게를 먹던 이 자리에는 지금 커피숍이 들어서 있다.


오늘 길을 가던 중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5천원의 행복을 만들어주셨던 예전 고기집 사장님이었다.
그 사장님은 얼마전에 개업한 근처 고기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시장주의 경제에서는 시장주의 논리에 따라 새로운 기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일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장이 줄어들거나 경쟁이 심해져서 기업들이 사라지게 되는 원이 되지만,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또 다른 시장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기업들을 창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경제 순환의 원칙대로 기업의 탄생과 소멸도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사람에게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
기업은 사라질 수 있지만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당신은 이제 퇴물이 되었으니 사라지시요'라는 명령에 따를 수 있을까.

"그 많은 바보 형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 강풀의 <바보>
'그 많은 식당 주인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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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천원 주웠어요

포토폴리오 2009. 6. 2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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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에 주운 돈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왜 안 기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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