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생에게
숨박꼭질을 하면 항상 내 등 뒤를 따라다니던 아이가 있었다. 나 혼자의 몸도 숨기기도 어려운 놀이가 숨박꼭질이기에 좋지만은 않았다. 나무 뒤에 숨어도, 미끄럼틀 뒤에 숨어도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이 때문에 나는 항상 들키기만 했다. 매번 숨박꼭질을 할 때마다 그 때문에 내가 자꾸 들키자 나는 불평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너의 동생이다'라고. 내가 동생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형이였는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동생이 나를 매우 잘 따랐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니가 초등학생이 되고 같은 나이의 동급생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 전까지는 나의 그림자처럼 움직였지. 놀이터에 놀러갈 때도, 숨박꼭질을 할 때도, 오락실을 갈 때도 그리고 슈퍼에 먹을 것을 사러갈 때까지도. 항상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했어. 기억이 나려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데 니가 갑자기 주머니에 있는 장난감 돈으로 계산을 하려고 했고 눈이 침침하신 늙으신 할머니께서 그 돈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을 했었지...-a-. 또 한번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높은데서 뛰어내리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니가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뛰어내리는 바람에 다친 적도 있었고.
아무튼 이렇게 매번 나만 졸졸 따라다녔기에, 과연 나중에 슈퍼에 가서 먹을 거나 혼자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했었어. 그러던 니가 어느 덧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결국 나는 졸졸 따라다니던 그림자를 잃었지.
내가 집을 떠난 지 벌써 6년, 그 동안 서로서로가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았기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는 못했지. 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너는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이제 수능시험이라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문을 넘으려하고 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내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수능시험 한문제도 안 풀어본 사람이기에. 그래도 걱정은 없다. 너 스스로 잘해 낼 것이라 믿기에. 내 그림자에서 벗어서나 멋지게 자라온 것처럼 지난 6년간도 멋지게 성장해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어.
혹시 우리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만큼 보지 못했더라도 좌절하지 말길 바래. 인생에서 결과란 남들이 평가하기 쉽게 요약해 놓은 한줄 평에 불과해. 남들이 보는 그 결과가 어떻든 너 스스로 걸어간 그 과정은 바뀌지 않는 거야. 결과보다는 그게 더 중요한 것이지.
그보다 너는 이번 시험을 통해 이제 집을 떠나 한명의 성인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시점이 될 거야.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는 너의 첫 번째 발걸음이 성공으로 시작되기를 기원해. 내 꽁무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 때처럼 이번 관문도 잘 통과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도 같이 따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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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점수가 아니라 등급으로만 나와서 실제 성적표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가채점 결과 잘봤다고 한다.
예상 수능등급컷라인대로라면 기대하던 최적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을 듯 하다.
시험 보고 동생에게 내가 한 일은 괜히 워크3 접속해서 오랜만에 게임하던 동생 게임 튕기게 한 일 정도..-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