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 폴 오스터

Element 2010. 7. 20. 00:30
자기 스스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왔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마련이다. 이 때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현실이 아닌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가장 일깨워주는 방법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영화 속 현실이 아닌 영화 속 가상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도 현실이 아닌 영화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폴 오스터의 소설, 어둠 속 남자도 그러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노인은 잠이 안오는 밤 시간동안 머리 속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부인과 평화롭게 잠을 자다가 갑자기 미국에서 내전이 난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그는 군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책은 노인의 과거 회상과 노인이 상상해낸 이야기를 끊임없이 오고 간다.

절망을 곁에 두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노인은 자신의 상상 속의 인물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잔인한 상상 속 세상을 보며 상상 속 세상이 결코 가공의 세상이 아닌, 단지 현실이 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책 속의 노인도 결국 저자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지각으로 이어진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라크 전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책 속의 세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예전에 블로그에 "상상은 위안을 준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우리는 소망하고 소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을 한다. 비록 머리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상상이지만 그렇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현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상상이란 가상이 아닌 우리가 희망하는 현실의 모습일 것이다. 완전한 객관도 완전한 주관도 없는 것처럼 상상은 현실이기도 하고 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소설을 보며 영화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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