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백성들

Acropolis 2008. 4. 9. 21:12
46%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로 4월 9일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선거결과도 예상대로 내가 원하던 방향대로 안나와서 기분이 나쁜 것도 있었지만,
그건 다수의 뜻을 따르는 민주주의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위안을 갖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46%라는 국민의 반도 투표를 하지 않은 이 상황은 너무나도 걱정스럽고 두렵다.

"정치인은 국민들의 관심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한 단어가 빠져있다.
제대로 된 한 단어를 넣어서 다시 말하면,
"정치인은 투표하는 국민들의 관심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해주는 국민들에게 관심을 얻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투표를 하지 않는 국민들을 그들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정치인이 여럿이 모여 정치인들이 된다면, 투표하지 않는 국민들을 좋아하게 된다.
그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세금을 가져다 주면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좋은 사람들이다.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하고 실정을 해도, 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기에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점점 더 왕에 가까워지게 되고 국민들은 백성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멀지도 않은 옛날, 나라를 지배하는 왕이 있었고 그 밑에는 수 많은 백성들이 있었다.
사람수에서는 백성들이 월등히 많았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정치라는 것은 나랏님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왕이 어떤 일을 하던, 그에 대한 불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간혹 왕에게 불만을 가진 몇명의 사람이 나타났지만, 반역이라는 죄목으로 간단하게 처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왕이 가진 권력은 바로 수 백만명의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이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힘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단지 그들은 수천일, 수백년을 왕에게 소원을 빌며 살아왔다.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는 것부터, 비가 내리게 해달라는 소원까지......

몇명의 선각자들은 주권은 왕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주권을 국민에게 돌리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명의 부자들은 왕의 변덕에 따라 자신들이 이룩해온 부와 권력을 한순간에 빼았기는 것을 보고 이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하여, 몇명의 선각자들과 몇명의 부자들이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해결책이 바로 투표이고, 그 주권을 우리에게 동등하게 나누어 준것이 바로 투표권이다.
(그 대신, 부자들은 자신의 부가 얼마나 그리고 언제부터 인가에 상관없이 자신의 재산권을 보장 받았다)

수 천년간의 노력 끝에 되찮은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우리는 망각하며 사는 것 같다.
그 권리를 망각한다는 것은 다시 예전과 같은 왕과 백성들이 존재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사는 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한명의 직원을 뽑아 그에게 집 열쇠를 맞겼다.
열쇠를 받은 그는 바쁜 우리를 대신해서,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고 필요없는 것을 버리고 집을 관리한다.
비록 집에 사는 것은 우리지만, 집이 깨끗하고 편한 집이 될지, 더럽고 불편한 집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인 것이다.
결국, 집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고르고 골라, 최선의 직원을 뽑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귀찮다는 핑계로 열쇠를 아무에게나 맞기고 있지 않은가?

내일의 집이 더 깨끗해질지 혹은 더 더러워질지는 말을 안해도 예상할 수 있을것이다.


ps. '대운하반대'와 '의료보험민영화반대'로 앞으로 많이 바쁘고 피곤해질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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