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Element 2010. 5. 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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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최근에 이렇게 빨리 읽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단 3일만에 한권의 책을 다 읽었으니.

예전에 몇번 블로그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 읽기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 읽기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이다.
평생 물질을 해왔지만 물속에서 불과 1분 밖에 못하는 해녀 같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생활화 하고 있지만 나의 한계시간은 1시간 남짓 정도 밖에 안된다.
딱 50~60페이지 정도 읽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읽더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져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심지어 한권 읽는데 1시간이 걸리는 만화책인 소년탐정 김전일은 한번에 1권씩 밖에 읽지 못한다.)

책을 읽고 읽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
이런 상황을 타게 하기 위한 나의 방법은 나눠 읽기다.
한번에 한권의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시간을 쪼개서 여러번에 읽으면 짧으면 일주일, 길면 2주일 안에 읽을 수 있다.
나눠 읽기를 하기 위해 항상 책을 들고 다니려고 노력을 한다.
이렇게 책을 들고 다니게 되면 밥을 먹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는 짜투리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양을 읽게 된다.
또한, 책을 읽고 멈춰 있는 시간에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머리 속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기에 읽은 내용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다.


글을 쓰다보니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는데 다시 정리해 보자면.
나는 이 책을 3일 만에 다 읽었다.

내가 3일만에 다 읽을 수 있는 계기는 두 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지필한 이 책의 특징이다.
진중권 전 교수님과 정재승 교수님이 공동으로 지필한 이 책은 21가지 주제에 대해 서로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한다.
미학자(문과)와 과학자(이과)의 설명을 동시에 들을 수 있기에 책 읽기에 집중력이 부족한 나도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시험기간에 수학공부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영어공부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수학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만약 진짜 시험공부였다면 저런 식의 공부는 지루함을 줄이고 동시에 성적도 줄이겠지만,
책 읽기는 시험이 아니니 저런 식의 구성이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진중권 교수님의 책은 너무 많이 읽었고 (해리포터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저자이실듯)
정재승 교수님의 책은 중, 고등학교 때 과학콘서트를 읽은 다음으로 처음 읽은 책이다.
저자 프로필에 써 있는 "과학 천재이자 글쓰기의 천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글을 잘쓰신다.
우리나라 과학자들 중에 글쓰기로는 유아독존이실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 중에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거의 전무하니.......

작년인가, 이공계 진학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1위로 과학콘서트가 뽑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역시 과학콘서트는 잘 쓴 책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온지 10년이 되어가는 저 책을 넘은 책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과학은 재밌구나"라고 느낄만한 책들이 나와야 그걸 읽은 학생들이 꿈을 키울 수 있을텐데,
우리나라에는 글을 잘쓰는 과학자가 거의 전무하다.
재미와 흥미를 줄 수는 없으니 "그래도 이공계 나오면 취업은 잘된다"며 현실적인 진로라고 자위하지만,
"의대 나오면 취업(?)도 잘되고 돈도 잘번다"는 현실적인 대안에 깨깽거리며 눌릴 수 밖에 없다.


고백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절은 박사 과정 때였다. 박사 과정이 행복했던 이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수많은 책과 논문과 자료를 미친 듯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리고......(후략)



고백건대, 이 석사과정생은 "수많은 책과 논문과 자료를 미친 듯이 읽어야 할 시간"에 크로스를 읽고 있었다.
역시 난 박사가면 안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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