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타고 떠난 유럽여행 21일째

떠나기 2009. 11. 22. 14:07

자동차타고 떠난 유럽여행 스물한번째날 (2007/07/16)

민박에서 숙식하고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아침 일찍부터 바티칸 투어를 떠나기 때문에 아침부터 심란했다. 어쩔 수 없이 잠을 뒤척이다 겨우 일어나 어제 냉동고에 넣어 놓은 음료수와 사진기를 챙기고 숙소에서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티칸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은 굉장히 길었다. 아침 8시에 줄을 섰는데도 불구하고 줄은 출입구가 어딘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햇살도 따가웠는데, 7분 30초 전에 출발한 빛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다녔지만 그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라면, 우리 바로 뒤에 예쁘고 스타일 좋은 러시아 여자 2명이 있어서 줄을 서는 내내 흐뭇함이 가시질 않았다(동영상 참조). 배두나 같은 느낌도 들어서 더욱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에 있는 분인데, 사진이 잘 안나온듯(몰래 찍느냐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 건너편에 보이는게 바티칸 입장을 위한 줄이다.




거의 3시간을 기달려 줄의 끝을 만나게 된다. 도난의 위험 때문에 우리 4명 모두 학생증을 안가지고 왔는데 다행히 다른 사람들의 학생증을 빌려서 할인 혜택을 받았다. 입장을 하니 3시간 넘게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미녀 2명은 지난 과거는 홀연히 잊은채 나를 떠나갔다. 그리고, 내가 줄서는 중간에 한 그림자 개그를 보고는 뻥 터졌으니 그건 기억하겠지 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자 개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티칸도 엄연한 국가라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근데 출국 심사는 안함...-ㅁ-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오 도착한 바티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 설명을 한시간 가량 받은 후, 식당에서 피자로 점심을 때웠다. 맛은 없었다. 음식맛 때문이지 지루하게 기다린 3시간의 여파인지, 우리 사이에서 번개가 쳤다. 그리고 다시 냉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이드를 해주셨던 가이드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란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어요...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기억으로는 너무 짰던 걸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참 그림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이게 왠걸. 고등학교 동창 진아였다. 45명 밖에 안되는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같은 날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를 하다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엄청나게 신기한 일이었다. 친구의 말로는 내가 2년 전에 그 친구의 소개로 미팅을 했을 때 만났던 여자들 중 한명과 내가 전혀 모르는 친구 한명, 이렇게 3명이서 유럽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리고 기욱이와 이야기 하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인데 기욱이와 진아도 구면이라고 한다. 2~3번은 봤던 사이라고. 투어를 마치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는 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가 진아에요




바티칸 투어는 확실히 돈을 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테네 학당,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보고 성당과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바티칸의 모자이크 그림까지, 로마 광광의 2가지 재미 중 하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천창에 붙은 저거 보느냐고 목 빠지는 줄 알았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드립 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천지창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저게 얼마나 큰지 ㄷ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핏보니 반지의 제왕의 사우론 같아 보이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은 만지면 뭐가 좋아진다고 함. (만진지 2년이 더 됐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켈란젤로의 성모마리아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티칸 광장, 오벨리스크는 유럽 어디가도 있는듯 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중앙에 서서 보면 기둥이 하나밖에 안보인다. 사실은 기둥 3개가 겹쳐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OTL...여행기 언제 다쓰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짠! 3년만에 쓰기로 했으니 이제 1년 남음




숙소에서 2번 전화를 걸고 로밍폰에 한번 더 걸어 친구와 친구의 친구와 2대2로 만났다. 2년 전하고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뭐, 내가 생각하기도 그렇고 그 쪽도 그렇고. 만난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져 어쩔 수 없이 콜레세움까지 걸어가야 했다. 손에는 각자 맥주 한병씩 들고는. 그곳에서 로마 유적 같이 뭍여있던 2년전 미팅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다급하게 그 이야기를 다시 뭍어버렸다. 유적은 안전한 보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책에서 본 유명한 사진을 따라하고 싶었으나, 대 실패



오늘 거쳐간 도시들 : 로마


 

설정

트랙백

댓글

비오던 그 날

사는 이야기 2008. 1. 25. 00:48
지난 일요일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나는 서둘러 대전으로 내려갔다.
바로 부산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버스를 대절해서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려오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월요일날 부산으로 떠날 버스와 같이 갈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해 대전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 대절계획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일단 부산이라는 먼거리 때문에 버스 대절 비용이 비쌌고 소식을 듣자마자 내려간 친구들이 꽤 있어서 내려갈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버스 대절은 포기를 하고, 월요일 아침 KTX를 함께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정했다.
또한 시간상의 문제로 부산까지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부조금을 온라인으로 걷어 전달하기로 했다.

하루 늦게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내려가는 순간부터 언제 올라올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해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친구의 모습을 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어제부터 계속, 잠도 자지 않은 체 그 자리를 지키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도 마지막까지 친구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공허함에서 느껴지는 무거움, 그 속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던질 수 없었다.
내가 어떤 말을 던져도 도움이 안될 것이라 자위하며,
그런 나는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남는다고 남았지만, 내가 도움을 준 일은 거의 없었다.
일손에 도움은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리에 떡하니 앉아 먹을 것만 축내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도운일은 새하얀 손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린 일뿐이었다.

문은 열리고 닫쳤다.
말하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친구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도 하나가 되었다.


그 날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그러나 보이지는 않았다.

설정

트랙백

댓글

무얼회

생각하기 2007. 5. 29. 23:02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재미있던 때는 초등학교 5, 6학년이였다.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경시대회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추억을 남겼었다.
특히, 6학년 때 몇몇 친구들과 결성했던 '무얼회'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경시대회 준비반이라고는 했지만 선생님께서 공부를 원하는 학생은 모두 받아주어 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한학년에 6반이 있는 우리 학년에서 30명정도 되는 인원이 경시대회 준비반 인원이었을 정도로 많았다.
공부하는 반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정해진 수업시간에 정해진 친구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닌 방과후에 남아서 다른 반의 여러 친구들과 논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 이었다.
이 준비반에서 같이 어울려다니는 친구 몇명이 있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고(나도 무척 좋아했지만)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한 친구가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모임의 이름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뜻을 품고 있는 무얼회로 정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주로 하는 활동은 경시대회반이 끝나고 학교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오뎅 또는 떡복이 또는 김말이는 먹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초등학생들에게 200원밖에 안하는 오뎅을 배불리 먹는 것은 사치였다.
매일 매일 5~7명정도 되는 인원이 우루루 몰려가 각자 200~500원어치씩 밖에 사 먹을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돈을 안내도 되는 오뎅 국물을 무한대로 떠먹는 것이 우리가 배를 채우는 방법이었다.
비록 매일매일 배불리 먹지는 못했지만 정말 즐거웠고 정말 맛있게 먹었던 같다.

배고픈 배를 어느 정도 채우면 다음에 하는 일은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었다.
우리가 노는 놀이터는 예전 내가 살던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였다.
왜 그 포장마차가 정해졌고 노는 놀이터가 우리 아파트 놀이터가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집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포장마차였고 놀이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 시간이 30분이나 길어지는 친구들이 매일매일 항상 함께했다. (나는 귀가시간이 1분...)

어떤 것이 우리가 먹을 것을 먹으러 가고 놀이터에서 놀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가 초등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은 지나갔다.
그리고 무얼회는 아쉬운 끝맺음과 함께 해체되었다.

5년동안 속마음도 전하지 못한체 끝나버린 나의 첫사랑보다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경시대회 준비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우리의 무얼회는 그 해 여름과 함께 경시대회 준비반의 변화와 함께 해체되었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준비했던 경시대회를 이제 대표로 확정된 6명만이 공부를 하도록 준비반이 바뀌었고,
남게 된 사람과 떠나야 하는 사람이 나뉘어져 사실상 무얼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시대회 준비반 마지막 날이 우리 무얼회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무얼회의 마지막날도 특별한 거 없이 평소처럼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주머니에 돈을 두둑하게 챙겨갔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포장마차에 가서 오뎅과 김말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국물로 배를 채우고
우리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놀던 놀이터로 갔다.
하늘이 우리의 마지막을 시기했던 것인지 이상하게 날씨가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불가능이 되어버렸고 그래도 마지막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집으로 갔다.
그러나 벌써 해가 떨어졌고 8시가 넘어버렸기에 우리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 걱정을 하셨고 집에서 노는 것을 허가 받지 못했다.
무얼회는 그렇게 아쉬운 끝맺음과 함께 끝나버렸다.
 .
 .
 .
유치원에서 진학하면서 초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유치원의 친구들과 다 다른반이 되었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친하던 친구들과 다른 학교에 배정받게 되었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나 혼자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학교 선배와 함께 단 둘이 들어가게 되었다.

어제 싸이를 돌아다니면서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같이 무얼회였고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해던 친구의 싸이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비록 다른 학교에 가고 나이가 먹으면서 10년이 가까워지도록 연락 한번 못해본 친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여름에 남겼던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추억은 시간을 먹고 자라며, 그렇게 자란 추억은 다시 만났을 때 우리를 더 즐겁게 만들 것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