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몽키즈

사는 이야기 2009. 1. 3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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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라제테, 1962년) 비해 너무 재미없었다.
원작은 기술상의 문제로 사진들과 나레이션으로만 긴장감을 이끌어냈는데,
12 몽키즈에서는 2시간이나 되는 상영시간동안 단순히 마지막 반전 하나만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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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 앤 나우

Documentary 2008. 10. 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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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주제가 자신의 친근하게 여기고 잘 알고 있는 주제이다. 감독은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선생님이자 평생의 친구인 부모님의 이야기를 택했다. 감독의 부모님, 그 두분은 모두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의 세상이 어둠 속인 것처럼 그들은 소리 없는 고요속에서 65년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고요를 깨고 정상인들의 세상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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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는 청각회복수술을 얼마 앞둔 부모님의 모습과 심경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발자국 소리, 개 짖는 소리, 나뭇가지가 꺽이는 소리를 듣는 것부터 사람들과의 대화까지, 드디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하찮게 느껴지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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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청력회복 수술을 받게 되고 그 후로 한달이 지나 드디어 테스트를 해보는 날이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듣는 소리라는 자극에 그 둘은 말없이 흐느껴 울었다. 드디어 자신들도 더 이상 고요속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 소리가 있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즐거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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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때 많은 기대를 안고 있게 된다. 기대로부터 펼쳐진 상상의 나래는 일이 시작된 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행복하고 기쁠 것이라는 미래로 보여진다. 그러나 일이 시작되고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일은 그렇게 행복으로만 가득차있지 않다. 우리는 시련이라는 보이지 않는 산을 넘지 않으면 꿈꾸었던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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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도 청력회복 수술을 받고 얻게 될 미래를 단순한 장미빛 미래로만 바라보았다. 아무런 준비가 없던 그들에게 닥쳐진 시련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듣는다고 하여도 언어와 소리를 다른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에 언어를 인식하는 공부가 없이는 대화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잘드는다고 해도 외국어 Listening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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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뿐만이 아니라, 뇌에 인위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전달해주는 신호를 넣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발생했다. 특히 감독의 어머니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심해서 차라리 고요하던 예전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조용하던 세상에 살던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가 기대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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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65년동안 소리 없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았던 건,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게 받은 피해의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가지고 장애인들을 평가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고는 세상이 캄캄하기에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보고는 음악조차 들을 수 없어서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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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영화에서도 보여주었다시피 그들의 인생은 전혀 불행하지 않았고 행복으로 가득차 있었다. 단 한가지 불행이 있었다면 방금 말한 것과 같은 일반인들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받는 피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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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대적인 것이다. 만약 미래의 새로운 인류가 우리가 가진 오감을 넘어서 또 하나의 감각기관을 갖은, 육감을 갖은 인류라면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모두 감각을 하나 잃은 장애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감각이 하나가 적기에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로 여길 것이다.
   감각이 하나가 적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불행한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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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2008 EIDF 시청자상 수상
ps2. 페스티벌 할때 쓴건데 그 때 약간의 수면장애와 스트레스가 있어서 리뷰에 허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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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Documentary 2008. 9. 2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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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폐막식을 끝으로, 내일 비경쟁부분 TV방영만을 남겨두고 있는 2008 EIDF
올해는 비록 해보고 싶었던 자원봉사자활동은 못해봤지만,
시청자 특별심사단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서 기쁘다. (덕분에 이번주가 무척 힘들었음)
각 작품에 대한 리뷰와 코멘트는 좀 미루기로 하고 어서 남은 것들 챙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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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프라임, 위험한 동거,자외선

Documentary 2008. 9. 18. 22:01

   더 이상 의식주가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눈이 중심이 되는 TV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피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그에 따라서 자외선에 대한 관심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외출을 할 때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은 일상생활이 되었고 바닷가로 놀러가면서 자외선차단제 없이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만물의 근원이라고 여겨져서 모든 토속신앙에서 떠받들어지던 태양의 빛이 이제는 피해야할 존재가 된 것이다.




   ‘다큐프라임 - 위험한 동거, 자외선’에서는 자외선이 사람에게 주는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직접적인 실험과 자료들을 통해서 시청자들이 눈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자외선 A와 자외선 B로 인한 피부노화나 피부병 등을 보여줌으로써 자외선의 위험성을 피부에 더 와 닫게 했다. 또한 그 뒤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말해주는 의견은 앞의 내용을 더욱더 신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쉬웠던 점은 자외선이 모든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과거에도 신문과 TV에서 너무나도 많이 언급을 했었기 때문에 식상한 주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제약을 받고 표현의 깊이에 받는 TV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자외선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만한 내용을 소개하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비록 뒤에서 나온 남녀 간의 차이, 인종간의 차이 그리고 자외선차단제간의 차이 분석들은 기존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내용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그 내용을 보고 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쓸 수 있는 정보는 높은 SPF지수를 가진 차단제를 사야한다는 내용뿐이었다. 나머지 내용들은 시청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기 민망할 정도로 얕은 정보였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태양에 대해 나쁜 점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비타민 D의 효능과 중요성을 통해 태양빛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이 되었다. 그렇지만, 곧이어 나온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정도면 충분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서 또 다시 태양은 하루에 5%만 만나고 나머지는 피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찌하다 생명의 근원이 이렇게까지 멸시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일까?




   자외선에 대한 위험은 사실상 피부노화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보이고 젊어 보이는 것이 큰 매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매력을 줄이는 태양(즉, 자외선)은 피해야할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차별의 이면에는 근대화 이후 생긴 직업의 계급화의 영향이 있다. 몸으로 노동을 하는 사람은 실외에서 일을 하기에 까만해지고 주름이 많아 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실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밝고 주름도 더 적을 수밖에 없다. 둘 다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고 단지 차이는 안과 밖뿐이지만, 우리나라는 한명을 우월한 사람으로 다른 한명을 열등한 사람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리고 이것의 중심에는 TV가 있었다.
   TV 속 드라마, 음악,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얼굴이 까만 사람은 잘 나오지 않는다. 또한 백인대역은 보았어도 흑인대역은 보기 힘들다. TV는 하얀 얼굴과 주름 없는 얼굴을 미의 기준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피부에 대한 위험성만을 끊임없이 외쳐댄다. 이 작품은 현실의 반영이 아닌 또 하나의 TV속 강요를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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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심사

사는 이야기 2008. 9. 13. 01:04

1. Android
이번 UP는 Android를 이용해서 휴대용 Application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모습과 행동이 인간을 닮은 로봇"이라는 Android의 말뜻이 오묘하게 끌린다.
신은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을 자신을 닮은 로봇을 만든다.

2. EIDF 2008
마이클 무어와 함께 다큐멘터리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EIDF.
2007에는 카탈로그도 당첨되고 EBS 본관가서 시사회도 참여하고 감상평을 통해 USB메모리까지 받았다.
올해는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 비해 늘어난 상품까지는 노려보려고 작정중이다. 흐흐흐

3. SF 소설
노스트라다무스 이후로 처음으로 사람들을 떨게한(기사1, 기사2)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 실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와 다른 외계인들이 문명을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SF소설을 써보려고 한다.
소설을 쓰려면 주변묘사와 감정묘사를 잘해야 하는데 그 방면으로는 맹꽁이 수준이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Step by Step으로 Keep going

4. 미학 오디세이
3권으로 이루어진 미학 오디세이를 다 구입해놓고 읽기 시작한지 한달정도 된 듯하다.
1권은 '평소의 나보다는 빠르게 남들보다는 조금 느리게' 읽었는데 조금은 복잡해진 2권 이후로는 진도가 안나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우선시해서 본다고 미학 오디세이에 시간 투자를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걸어다닐 때나 시간이 날때 그리고 힙합 플래야에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 볼때마다,
책에서 읽은 내용과 여러 미학자들의 주장을 놓고 문제를 비교해보고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적 문제가 여러 분야에 걸쳐있고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 놀라곤 한다.
모든 인문, 사회학의 뿌리인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사진, 심지어 수학의 집합론에까지 영향을 비친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한다는 것은 진리인 듯 싶다.

5. 토론
의견이 원활하게 개진되고 되도록이면 동어반복이 없는 새로운 토론 시스템을 갖춘 사이트를 구상 중이다.
그 시스템은 전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나의 주 목적은 정치분야에 있다.
민주주의 근본은 자유로운 토론과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지만, 우리는 토론이라는 전과정을 원활하게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인들의 말 번복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 못하고 다수가 원하는 정책이 아닌 소수의 결정에 의한 정책이 추진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에 공포된 공식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고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장이 있다면,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되고 그 때문에 그런 사이트를 구상중이다.
하늘 꼭대기까지 바발탑을 쌓으려는 인간들이 탑을 못쌓게 된 것은 언어가 달라 대화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우리가 민주주의 탑을 쌓지 못하는 것은 토론을 통한 원활한 대화를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ps. 몇가지 더 있는데 일단 각설하고 나는 지금 부모님 앞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나의 건강을 자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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