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사는 이야기 2010. 9. 2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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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은데...진짜 할말이 너~무 많은데...어찌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네...직접 말하기도 그렇고...(산수유 광고톤으로)
(블로그에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생각이 많고 말이 많아서 그런지 글로 써지질 않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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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

생각하기 2010. 8. 28. 00:30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봄이나 가을이었을거야.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낮잠이 올 정도로 선선한 날씨였으니.

그 때 나는 잔디밭 위를 걸어다니고 있었어.
산들산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잔디밭 위에 그냥 누워버리고 싶더라고 어렸을 때처럼.
근데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거야.
잔디밭에 함부러 누웠다간 쥐똥 때문에 괴상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이 떠올랐지.
난 여지껏 입원 한번 해본적 없고 버스에 탈 때도 안전벨트를 맬 정도로 안전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이거든.
당연히 잔디밭에 눕고 싶었지만 눕지 못하고 그냥 누워 있는 상상을 하며 서 있었어.
그렇게 한참을 잔디밭 위에 서서 있었는데 문뜩 한쪽에 난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정말 오랜만에 본 강아지풀이었어.
어렸을 때는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말이지.
만지면 강아지 꼬리처럼 부드럽고 친구 등뒤로 몰래 다가가서 간지럼 피우며 놀기에 딱 좋았지.

"냠냠"
그렇게 강아지풀을 손에 들고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놀다보니 어느 순간 배가 고파진거야.
그래서 먹었어.
어렸을 때 개구리 한마리, 메뚜기 한마리도 안 먹어봤지만 이건 한번 먹어보고 싶더라고.
나름 이것도 풀이니 생식이고 털 끝에 검은깨처럼 달린게 '난 웰빙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더라.
풀에서 난거라 위험할지 모르니 물에 씻어서 먹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먹으면 풀이 풀 죽을까봐 그냥 날로 먹었지.

일단 입 속에서의 느낌이 안좋았어.
검은깨에 눈이 팔려서 정작 중요한 강아지풀에 달린 털들을 잊고 있었던 거야.
입속에서 돌아다니는 털들 때문에 머리 깍다가 실수로 머리카락을 한뭉큼 먹은 듯한 느낌이 나더라고.
물론 맛도 별로였고.
만약 강아지풀이 맛있었다면 편의점에서 옥수수 수염차 대신 강아지풀차를 사 먹을 수 있었겠지?

아무튼 꽃냄새와 선선한 바람에 마냥 신난 강아지처럼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는데 강아지풀 하나 먹고는 풀이 죽어버렸지.
이것 저것 풀을 잘 뜯어먹는 강아지라도 내가 먹었던 강아지풀을 먹었으면 분명 맛이 없다고 했을 거야.
그리곤 분명 맛 없는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 마냥 풀이 죽어있었겠지.

그 날 이후로 힘들 때나 피로회복(피로가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의 회복) 될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더라고.
'맛 없는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 마냥 풀이 죽어있다.'
뭔지 모르게 재미있는 문장인 것 같아.
지금은 풀이 죽어있지만 다른 맛있는 풀들을 먹으면 금새 힘이 솓아날 거 같은 느낌도 들고.
풀이 죽어 있을 땐 머리 속으로 강아지풀 먹은 강아지를 한번 상상해봐.
그러다가 풀 죽은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스스로 웃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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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쥐 시골쥐

사는 이야기 2010. 8. 12. 16:30
점심쯤에 큰아버지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고 계신 큰아버지는 시골에서 교사를 하시는 우리 부모님과 사뭇 달랐다.
직업적인 영향인지 부모님으로부터 먹고 사는 문제라던가, 사회에서의 경쟁이라는 단어를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큰아버지께서는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힘든 일이 있어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고 극복해야 한다라던가,
끊임없이 공부를 해서 한 분야의 전문가와 어학에 능숙해져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아버지는 대학생이던 큰아버지가 집에 내려올 때마다 말해주는 서울이야기를 듣고는 서울에 엄청 가고 싶어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명절을 위해 서울에 올라가면 어느 누구보다 신나하시고 서울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신다.
서울이 제공하는 수 많은 문화적 혜택(공연이나 맛집이나 기타등등)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고 계시다.
내가 대학 합격이 결정되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놀러간 곳이 해외도, 제주도도 아닌 서울 대학로였다.
그 곳에서 연극을 보고 스타벅스에 가서는 "여기가 스타벅스래"라고 말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메리카노 시켜놓고는 "왜 이리 맛없는 커피가 비싸"라고 말했던 것도.

아버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울쥐 시골쥐에 나오는 아직 서울에서 살아보지 않은 시골쥐이다.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사람은 강남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시는 큰아버지는 서울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살아본 시골쥐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 나도 신기한 것도 많고 사람도 많은 서울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수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고 서울에 올라가서 산다면 최소 월 50은 방값에 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집 근처에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다면 매달 50만원씩은 저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걸 모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매년 600만원이나 돈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여러 문화적 혜택을 포기해야겠지만, 사실 매달 50만원 월세도 부담인 사람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수나 있을까?

사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서울이 주는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 값 비싼 집, 비싼 월세에 저당 잡혀서 살아간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지방에서는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하게 생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울쥐가 되고 시골쥐가 되기 싫어서 그렇게 할 수 없을뿐.
(사실 지방에 적당한 일자리만 많이 만들어주면 스스로 시골쥐가 되겠다는 사람이 생기겠지만,
기존에 지방에 있던 공장들마져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마당에 저런 변화를 기대하긴 큰 무리일 것이다.)


결론. 밥은 도시락 싸들고 다닐테니 집값 좀 어떻게 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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