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생각하기 2009. 9. 2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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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시련이나 좌절의 순간들이 있다.
다행히 인간의 기억은 영원하지 않기에 시간은 좋은 해결책이 되어 준다.

그러나 그와 반대의 문제에 부딛쳤을 때에는 당황하게 된다.
시간은 해결책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존재일 뿐이다.
이럴 때 드는 좌절감을 극복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다.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결국 다시 시간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알콜 중독자처럼,
피폐해진 삶을 잊기 위해 약을 하는 마약 중독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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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켜다가

생각하기 2009. 9. 4. 14:48
스타 유즈맵 용량 제한이 2MB 밖에 안되서 어떻게 하면 고양이가 아닌 쥐처럼 용량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광우병처럼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는데에 아로마 향초가 좋다고 해서 촛불을 하나 사왔다. 향초라고 사오긴 사왔는데 이게 제대된 아로마 향초인지는 잘 모르겠다. 향을 맡아보려고 코를 대운하다가 촛불에 데일뻔까지 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도 국산 혹은 가까운 재일동포들이 만든 일본산이거니 했겠지만 IMF이후 개방으로 바뀌어버린 경제정책 덕택에 이것이 실정 한국에서 난 것인지 중국에서 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찰에서 불법, 불량 제품들을 검사는 한다지만 곰 앞에 쥐약일뿐이다. 밀려오는 화약에 휩쓸려야 했던 일본후기무사들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있다가 MBC에서 하는 무한도전이나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 것도 안봐서 MBC에서 볼게 2화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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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이임사

생각하기 2009. 8. 2. 03:52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권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제 4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2년 8개월 남짓 전인 2006년 10월 30일,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는 결의를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앞당겨 떠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지난 6월 30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략하게 밝혔습니다. 되풀이하여 말씀드리건대 새 정부의 출범 이래 발생한 일련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강한 책임을 통감함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당초 취임의 변에서 말씀드렸고,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저는 인권이란 이념적 좌도 우도 아니고, 정치적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인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평범한 소신을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으로 지켜야 할 가장 으뜸가는 업무수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며, 위원회와 '긴장어린 동반자'의 관계인 시민사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과 성의로 자료제공과 홍보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고, 제 스스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소신과 노력은 극단적인 분리와 대립이 항다반사가 되어버린 세태 아래 빛을 잃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존중받는 일상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정권교체기의 혼탁한 정치기류에 막혀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근거나 법적 업무와 권한에 대한 성의 있는 이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몰상식한 비판, 무시, 편견, 왜곡의 늪 속에서 갈무리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직 중에 얻고 쌓은 자신의 소회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는 금언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먼 장래를 기약하면서 홀로 가슴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감히 몇 마디 당부와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부하듯이 한동안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경이로운 나라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는 군사독재의 질곡을 벗어던지고 대다수 국민이 일상적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행태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성취는 많은 후발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나 많은 나라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던 자랑스러운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근래에 들어와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내뱉다시피 던진 충격적인 고백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국제사회에 나가보니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다."는 유엔 수장의 솔직한 고백이 곧바로 국제인권지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서글픈 현실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는 정부 관료나 국민의 숫자도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인권의식은 과거에 자행되던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와 같은 노골적인 인권유린의 악몽의 포로가 되어, 진정한 선진사회를 향한 전향적인 발돋움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고귀한 가치는 정권의 교체나 연장에 따라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정권의 교체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코 국민은 인권의 탄압이나 후퇴를 선택할 리 없습니다. 앞선 정권의 실정의 유산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반된 필연적인 변화로부터 구분해내지 못하면 때대로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선진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1년 반이 지난 이날까지 그 장점이 만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느낀 소감은 적어도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통의 자세나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신정부의 정식 출범에 앞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이명박대통령이 추진할 국정과제의 청사진을 입안했던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도하게 높아진'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으로 독립기관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국내인권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기에 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좌파정부'의 유산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치논리의 포로가 된 나머지, 1993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부응하여 설립된 기구라는 것, 권고결의 당시에 국가인권기구를 보유한 유엔위원국이 5,6개국에 불과했으나 15년이 지난 오늘에 120개국으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탄생했을 기관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인권의 추세에 둔감한 정부이기에 지난 3월 말에는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한 절차 없이 유엔결의가 채택한 독립성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기구의 축소를 감행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조차도, 위원회를 특정목표로 삼은 명백한 보복적인 탄압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불의에 앞장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실로 깊은 비애와 모멸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나라, 내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깊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내 나라, 내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임을 믿는 저이지만 그간 빚어진 실로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세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습니다. '청구인 국가인권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이라는 법적 형식을 취한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입장이 다를수록 요구되는 정부기관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안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임은 한 사안에서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의 남용과 부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본연의 소임입니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도 고언을 드립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전래의 별칭이 상징하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권능은 실로 막강합니다. 그러기에 언론이 짊어져야할 책임 또한 무겁습니다. 다수의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언론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생명이 업무의 독립성에 있듯이, 언론의 생명은 정확한 사실의 보도에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도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양식이자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이른바 '북한인권'이나 '촛불집회'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위원회의 법적 권능에 대한 무지, 오해, 사실왜곡과 같은 부끄러운 언론행태는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동료 여러분, 인간의 존엄을 숭상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저는 물러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철학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의 재직 중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독립기관의 장의 직을 수행한 행운은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지 못한 특권과 축복이었습니다. 다만, 단 한 차례도 이명박대통령께 업무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무능한 인권위원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은 제 개인의 불운과 치욕으로 삭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께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유엔총회가 결의를 통해 채택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사랑으로 저를 지켜주었던 동료들께 감사를 드리고,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린하면서 강행한 정부의 폭거로 인해 창졸간에 빅장을 잃게 된 동료직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의연하게 걸어갑시다.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

모두에게 건강하고도 화목한 가정의 축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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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생각하기 2009. 7. 6. 21:13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자체를 취미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평범한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보는 영화가 모두 재미있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이 있고 그 중에는 재미 있는 영화도 있고 작품성 있는 영화도 있고 보면 시간 아깝다는 생각만 드는 영화도 있다.
그런 영화들 중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영화에 대한 호감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영화를 보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선택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주객이 전도된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지만 주말에 할일이 없기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비록 영화가 재미없을 것이라고 예상은 되지만 원칙적으로나마 문화생활을 할 수 있기에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시간은 때울 수는 있지만, 반대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곳에 돈이 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
진정성도 없는 일에 왜 시간과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본 영화들이 과연 자신의 필모그래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가치관의 차이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 평론가들은 별점을 하나밖에 안주는 한이 있더라도 개봉하는 대부분의 영화를 보려고 한다.
잘못된 영화를 보면 볼수록 잘된 영화가 어떤 면에서 잘되었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영화라 직업이 아니라 취미의 하나 일뿐이다.
즉,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나의 모든 시간과 열정과 돈을 쏟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내 모든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부을 가치가 있다고 확신이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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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기 2009. 6. 11. 14:53
인권 운동을 하던 사람이 죽으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에서 살 수 있을까?
어짜피 천국 또는 지옥, 2가지의 결론 밖에 없으니 천국에 가는 경우에 대해서 간단한 상상을 해보자.
(연옥을 빼자, 어짜피 나중에 생긴거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천국을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천하려고 했던 모든 인류를 위한 아가페적인 사랑에 근접하게 전 인류에 대한 동등한 인권을 위해 싸웠고 일했던 인권 운동가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처럼 보인다. 천국에 들어가게 된 인권운동가는 그 곳에서 행복한 삶을 즐기면서 자신이 생전에 했던 좋은 일들에 대해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되지 않아 지옥에서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문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권운동가가 보기에는 인간에게 자행되는 고문도 인권침해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은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 무한한 고문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가 천국에 갈 정도로 선한 인권운동가였다면, 분명 이 문제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의를 청할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의를 신청하는 사람은 그 한사람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인권 운동가, 인류에 대한 박애와 사랑을 실천했던 다른 기독교 인들도 다같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삶을 살았고 천국에 와서도 그 신념을 지키고 있다면. 결국 예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 인권운동가는 천국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결국,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더라도 평생을 거기서 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내가 기독교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은 지구에서는 그렇게도 인간에 대해 선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나라에서는 너무나도 인간에게 잔인하다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도 고문을 폐지하는 마당에 예수님이 만든 지옥에서는 잘못한 사람을 평생 지옥불에서 살게 한다는 이야기는 혹독하게만 느껴진다. 비록 천구에 가더라도 그의 뜻에 반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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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율과 복지국가

생각하기 2009. 5. 11. 22:03
예전에 세계적으로 가장 잘된 복지국가들인 북유럽 국가들을 보고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북유럽 국가와 같은 복지국가는 좋지만, 국가가 너무 많은 복지 정책을 펼쳐서 사람들의 삶의 의욕을 없애고 그로 인해 자살율이 올라가는 문제점이 있다.
북유럽식의 복지국가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자살율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관점에서 그 비판을 다시 들여보면, 주장이 전혀 맞지 않게 된다.
복지가 잘되서 자살율이 그렇게 높다는 북유럽국가들보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높아졌다.
너무나도 사회복지가 잘되서 국민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보다,
너무나도 사회복지가 안되서 국민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가야 할길은 복지국가임이 자명해졌다.
단점이라고 불리는 자살율마져 우리는 극복(?)해 버렸으니 이제 장점만 남은 것이다.

마지막 단점이라고 해봤자 부자,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다는 것인데,
로또가 당첨되서 갑자기 중상층(상류층 아님)이 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많이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세금을 더 걷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는데에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대로 우리 사회는 행복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즐거운 증명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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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생각하기 2009. 4. 30. 22:15
미용실과는 다르게 남자들은 자기가 가던 이발소을 왠만해서는 바꾸는 법이 없다. 머리 같은 거에 신경 쓸 정도로 세심하지 않을 뿐더러 어짜피 이전과 같은 짧은 머리를 원하기에 굳이 바꾸질 않는다. 물론, 나도 남자인 아버지를 따라 딱 2군데 이발소만을 줄기차게 다녔다. 왜 이발소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냐면 내가 그 기간에 동안에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아참, 요즘 이발관이 어디있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린이날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옛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사를 온지 얼마 안되서 우리 가족은 10년동안 가던 목욕탕 밑 이발소에서 집앞에 있는 이발소로 머리 깎는 곳을 옴겼다. 처음 보는 이발사 아저씨 얼굴이 어색했지만 그 전 이발소에서는 나오지 않는 따뜻한 물이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동내가 크지 않고 매번 올 때마다 삼부자가 같이 머리를 깍았기 때문에, 이발사 아저씨는 우리 가족을 금새 기억하셨고 붙임성이 좋으신 아버지는 아저씨와 금방 친해지셨다.

여름이 되기 전이었으니, 아마 이 맘때 쯤이었을 것이다. 이발사 아저씨는 서해바다 어딘가에 있는 섬에 있는 자신의 팬션에 여름마다 놀러간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여름에 자신의 팬션을 빌려줄테니 그곳에서 한 일주일 정도 놀다오라고 말하셨다. 여름에 가족 여행을 갈곳을 찾고 있었기에 우리는 흔쾌히 아저씨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는 나는 한동안 서해바다 어딘가에 떠 있을 섬과 팬션을 생각하며 즐거워 했던거 같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은 아저씨의 팬션으로 놀러가질 못했다. 여름이 오기전 아저씨는 지병이 생기셔서 이발소 잠시 닫으셔야 했고, 내 머리속에 팬션이 점점 더 또렸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아저씨는 점점 희미해졌고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이발소를 간 것도 그곳이 마지막이었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미용실을 가서 걱정이라는 뉴스와 함께 나도 이발소로의 발길을 끊었다.

그 이후로는 학교 친구들 혹은 홀로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로, 지금은 "머리 깍으러"라는 아무도 공적인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곳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 그 곳의 종업원들은 내가 들어올 때마다 다 같이 인사를 하고 머리를 깍아준 후에는 명함까지 손에 쥐어주지만, 나는 종업원과 손님 이상의 어떠한 정도 느껴보질 못했고 그 때문에 손에 쥐어준 명함을 써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제 길거리에서 예전과 같은 이발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를 자를거라는 상상조차 하기도 힘들다.
결국 지난 10년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돌 것이다.
서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속 팬션이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 떠돌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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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생각하기 2009. 3. 20. 07:20
어렸을 때로 돌아가 다시 그 때의 눈을 가지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안경이 없어서 환하게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은채 사람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산수실력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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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생각하기 2009. 3. 9. 07:10
짜증이 별처럼 쏟아지다가 갑자기 예전에 하던 생각이 생각났다.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 판타지를 느끼고 있을 때의 생각이.

완전히 어두운 방안에서 나 혼자 눈을 뜨고 한동안 누워 있을 때 였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항상 빛을 보고 있는 상황이기에, (심지어 태아일때도 뱃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본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빛이 없기에 눈을 뜨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스스로도 구분이 안됐다.
다만 이 어색함을 벗어나려고 부지런히 발버둥 칠뿐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다.

방안에 누워 핸드폰의 주소록을 열어본다.
그 전에 있던 핸드폰은 200명밖에 저장을 못했기에 한명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한명을 꼭 지워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리가 없기에 2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내 주소록 안에 들어가 있다.
한참동안 주소록에 있는 명단들을 뒤져보고는 다시 폰을 닫았다.
내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연락을 할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단순히 어두운 것 자체만은 아니다.

막막해지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 제주도에서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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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립오페라단원의 글

생각하기 2009. 3. 8. 11:11

오늘 저는 너무 혹독한 세상을 경험하였습니다.
요즘 저는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결코 내가 겪어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성장하기위한 성장통을 겪는 거라고.. 결국은 잘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 마음이 아프고 서글펐습니다..
저희는 3주전 국립오페라단으로 부터 일방적인 전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할 줄 아는것 이라고는 노래뿐인 저희들이었고...
노래만. 예술만 아는 저희는 돈도, 힘도 없어 그냥 길바닥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간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응원을 얻기위해 밖으로 나가 시민들에게 서명도 받고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 글이 적힌 전단지도 나눠드리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첫 직장이었는데...
13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부해서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를.. 무대에 설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고 감사해서 보험도 없이 70만원밖에 안되는 기본금을 받으면서도 좋다고 열심히 휴일도 없이 마냥 즐겁게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지금.. 새로 부임한 이소영 단장은 우리 오페라합창단 전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해버렸고 어찌 할줄 몰라 마냥 발만 동동 구르던 저희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 할 수 없었기에... 화려한 직업이라는 껍데기 속에 스스로 감춰두기 급급했기에, 밖으로 나가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망가지면서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인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밑바닥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까봐...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너무 속물 같지만 그게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계의 이런 열악한 현실이 세상 밖으로 꺼내져야 했기에...
후배들에게 같은 고통을 안겨 줄 수 없었기에 제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그리곤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저희들에게 세상이 마냥 두 손 벌리고 반겨주지만은 않았습니다..
투쟁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싫어하시는 어르신들...
저도 그 심정 이해는 합니다.. 저도 이렇게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투쟁하시는 분들의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너무 바쁜 요즘 남의 일에 관심 갖기에는 여유가 없는 이들...
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나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던가하는 반성을 해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정말 본인 일 마냥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기에...


이소영단장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 미루기...
서로 상대편이 승낙하면 자기들도 저희의 요구를 승낙하겠다는...
그러나 누구도 자기들이 먼저 해주지는 않는...
책임회피.. 책임전가... 미루기... 티비 속에서만 나오는 것 인줄 알았어요...
눈앞에서... 내가 티비 속에서 보던 것을 당하고...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1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어요..
어느 누구도 해답을 주지 않았고 책임을 미루기만 할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러다 오늘...
오늘 예술의 전당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희망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경제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제 어제가 되나요??
갑작스레 그 연주에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는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저희의 억울한 사정을 대통령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에게 꼭 저희의 사정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국립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하는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음을...
혹시라도 이미 윗분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고, 당신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라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음악계 모든 사람들이 오페라합창단이 없어져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데, 왜 그러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 마음 하나로 예술의 전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펼쳐진 광경은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말았습니다..
무리지어 여기저기 열 맞춰 대기하고 있는 전경들...
사복을 입은 젊은 남여 의경들...
경호원들...
사복 경찰들...
그리좁지만은 않은 예술의전당 음악분수대 앞 광장을 거의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오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저희는 조용히 저희의 마음이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서있었습니다..


그분들도 그분들이 하실 일을 하시는 거니까...
저희도 최대한 그분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나름의 1인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저 무대인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하는 서글픈 마음을 위로하며 광장에 흘러나오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복 의경들이 저희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저희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을 에워 쌓습니다..
저는..
피켓을 들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구호도.. 사람들을 향해 항소를 하거나 말을하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무대를 바라보며 마냥 서글퍼만 하며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저를5~6명되는 사복 여자의경들이 둘러싸더군요...
그 뒤에 한 줄 더...
남자들에겐 남자의경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5~6명 정도 되는 의경들이 빙 둘러서 원으로 감싸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의경들이 한 줄로 서서 그 원을 가리고...
또 그 뒤에는 전경들이 길에 한 줄로 대통령이 들어갈 길을 인간 바리케이드로 만들어서 가리고...
그 중간에는 경호실 사람들이랑 사복경찰들이 여기저기...
구석구석에는 열 맞춘 전경들이 대기...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습니다..
결국 우리가 불법을 행한 것도 아니고 시끄럽게 떠들거나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1인 시위하고 있는 건데 이게 뭐하는 거냐며 오빠들과 경호부, 경찰들이랑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내가...
내가 마치 범법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난 그냥 우리 사정을 그분께 알리고 싶었던 것 뿐 인데...
힘이 없어서...
국민의 소리에, 음악가들의 소리를 문광부에서 들어주지 않으니까 더 높은 분이 말해주면 좀 들어줄까 싶어서.. 그 마음하나로 나간자리였는데...
젊은 장정 6명이 덩치가 크지도 않은 우리 오빠 한명을 완전 숨도 못 쉬게 꽉 감싸고 몸으로 미는 것을 봤습니다...
그냥 피켓만 들고 있겠다고...
대통령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그렇데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무대에서 피켓하나 들고 서있던 우리를..
누군가 지휘하는 사람이 "야 날개 만들어!!" 라고 말하자 의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게 에워 싸버리는...
우리를 호암 마마보다 더 무섭고 더럽고 추악한 무언가를 대하는 듯한 그 태도에 화가 난 오빠들 중 한 사람이 "진짜 더러워서.. 뭐 이러냐.. 우리나라 진짜 멋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경호실분인지 경찰청분이신지 모르겠지만 좀 높아 보이는 분께서...
"그럼 나라를 떠나면 되겠네.. 나라를 떠나!!" 라고 하시더군요...
참...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께서 국민에게 하실 말인거져..
나라가 맘에 안 들면 떠나버려라!!!
휴...


제가 그리 많은 나라를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지낼 때 단 한순간도 우리나라를 부끄러워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서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밝혔고... 진심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욕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그래도 나라가 잘살고 강해야 우리도 어딜 가든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거야.. 라고 하면서 나라사랑을 강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랏님들은 국민을 그렇게 생각 안 하고 계셨던가 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
비폭력 시위를 하고있는 우리를...
공권력을 남용하여 사람 숨막히고 자존심 상할 정도로 인간 올무를 만들어 휘감은 것도 모자라 반말 찍찍해대며.....
대통령이 우리가 1인 시위하고 있음을 절대 볼 수 없도록 인간 바리케이드를 몇 겹씩 만들어 에워싸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나라를 내가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무대를 코앞에 두고 이런 수모를 겪고 있어야 함이...
너무 서러웠습니다..
너무 서글펐습니다...
그냥 다 그만두고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도안돼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있었습니다...
진짜 우리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오빠들중 한명은 경호하는 사람의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 맞기도했습니다...
밤이라 형태만 간신히 찍혔지만 그래도 이런 부당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이렇게 하는것이 그들의 일이기에 이해하려고 했지만 납득이 도저히 갈수 없게 너무 과잉진압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것을 본 내 앞을 지키고있던 사복 여자 의경...
20살 갖넘어보이는 앞길이 창창한 아이였습니다...
제 얼굴에 자신의 카메라를 갖다 대더니 제 사진을 찍더군요...
너무 어의가없어서 말도 안나왔습니다..
제 사진을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무 얌전히 가만히 앉아서 시위한다고 있는 사람을 처음 봐서 였을까요??
지우라고 했습니다...
도망가더군요...


좀 높아보이는 사람한테 저사람불러서 보는 앞에서 사진 지우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분 왈.."사진 찍혀서 피해본거있어?? 피해본거있냐고??"
제가 기분나빠요 그러니까 지우라고 하세요!라고 했더니"그러니까 사진 찍혀서 피해본거 있냐고??"라고 말하시더군요....
그앞에 계시는 다른 분께 아저씨같은면 얼굴에 대고 허락도 없이 사진 찍으면 기분 좋으세요?? 그냥 냅두실꺼에요??라고 하니 묵묵부답이시더군요...
그여자아이가 제가 찍은 동영상땜 본인도 찍은거라기에 동영상 지워버리고 그럼 사진도 지우라니 의경들과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근처에도 못가게 하더군요...
지우고 확인시키라고 했더니 본인 개인사진들이 있기때문에 확인시켜줄수는 없다더군요.. 나도 개인사진 가득했는데 나랏님들은 국민개인사진 확인 가능하고 우리는 확인 불가능이라는거 오늘 배웠습니다...
음악당 지붕위에서도 나랏님들께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습니다..
뭣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수많은 나랏님들의 인간 바리게이트 덕분에 저희는 대통령의 머리털 하나도 보지못했습니다..
그동안 문광부 주체로, 국가행사로 수많은 연주를 했던 우린데...
그런 우리를 이제는 범법자취급하네요...
수고했다고 감사하다고 좋은연주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그 입들이, 이제는 나라가 맘에안들면 떠나버리라고 하고 조용히 입다물고 있으라네요...
높은곳에 계시는 나랏님중 한분이 그러셨다네요..
합창단이 떼쓴다고 상임화시켜주냐고.. 그냥 밀고 나가라고...
합창단 잘 처리하라고...
ㅜ.ㅜ


우리 떼쓰는거 아닌데....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건데...
우리가 처리되어야하는 문젯거리라니....
상임화시키겠다는 약속으로 7년이란 시간 이어져온건데...
7년간 축적되어온 전문합창단으로서의 능력을 완전 짓밟아 버리겠다니...
양질의 오페라를 위해 전문오페라합창단 쫓아내고 대학생들 데려다가 합창시키고...
신입단원뽑을때 조차 기본적으로 음대 4년 졸업 이상이 조건이었으면서....
자기들이 안바꿔놓은 규정때문에 우리를 없애겠다고 우겨대면서 재학생을 데려다 쓰는건...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건 좋다..
그렇다고 기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겠단말인가...
그들이 졸업하면 어디로 갈것인가??
오늘의 실망과 상처는 이런것들 조차도 내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한다....
뉴스에서만보던 일들이 하루하루 내게 일어나고있다...
누구에게 호소해야하는것일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않는다...
약자의 소리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다는거...
이제야 알았다...
그간 내가 배운건, 믿고있던것들은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나의 믿음은...
나라에 대한 신의는.. 사랑은...
투신하는 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같다...
분명 지금 이소영단장이 합창단을 없애는것이 잘못이라고 나랏님들도 인정한단다....
근데 윗선..그게 도대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빨리 합창단 해결하란다... 밀고 나가란다...
이번 일들을 통해서 나는 성장하는 걸까??
이대로 상처만 받고 불신만 쌓이게 되는것은 아닐까??
너무 서글프다...
세계 최고가 되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꾸던 내가 미워진다...
뭘위해 그런 꿈을 꾸었던가...
나라는 국민을 원하지 않고 있는거 같은데....
지금 이순간에도 아직 한켠에 그래도 희망을 담고, 진짜 그렇진않을꺼야라고 위로하고 있는 내가 미워지려고한다....


너무 서글프다..
노래하고 싶을 뿐인데..
무대로 돌아가고 싶을 뿐인데...
억지로, 강제로, 부당하게 빼앗아간 우리의 자리를 돌려달라는건데...
무대에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싶은데...
더 좋은것으로 더 열정 담긴걸로 나눠주고싶은데...
내 열정은 이렇게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데...
서글프다...
현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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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에,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단순히 내 이기심 때문이었다.
학교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렇기에 다시는 그런 무관심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 사회를 자각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지금은 1년의 몇십억원의 CF를 찍는다는 김연아도 불과 몇년전에는 스폰서 하나 없어서 연습하나 제대로 못했었다.
바로 당신의 옆에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람이 언젠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작은 관심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큰 도움이다.
병에 걸렸을 때 가장 서러운게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을 때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부딛친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들의 무관심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겠지만,
그에게 같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찬가지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헌신적인 봉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으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마이더스의 손이 없고 불로장생 할 수 있는 불로초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 자신이 언젠가는 사회적 약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할 우리가 스스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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