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우답

생각하기 2009. 2. 24. 22:47

어떤 사람은 그렇게(경제건, 직위건) 살지 못하고 있냐는 질문에 쉽게 할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대답은 이것이다.
"그 사람이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쉽고 자명해보이는 답변이다.

그 사람에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너는 왜 빌게이츠처럼 잘 살지 못하냐?"
그러면 분명 그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고흐를 만난다면 이것을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그 사람처럼 살지 못했습니까?"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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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생각하기 2009. 1. 24. 00:13
눈이 닮았다.
코가 닮았다.
입술이 닮았다.
머리가 닮았다.
체형이 닮았다.
더 이상은 없을까?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배운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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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생각하기 2009. 1. 7. 13:39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가 혼자 그네를 타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한 사람은 그네에 앉아 고민에 빠져있는 아이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답니다.
그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돌이 하고 있니?"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통령, 의사, 과학자 이런 것들을 말이니?"
  "아니에요, 그건 꿈이 아니라 직업이잖아요. 전 크리스마스 소원 같이 꼭 하고 싶은 꿈 말이에요"
  "너의 꿈이 무엇인지 듣고 싶구나, 아저씨에게 말해줄 수 있겠니?"
아이는 잠시 고민에 빠졌어요.
  "저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세계의 평화도 지키고 싶어요"
  "참 바쁘게 살아야겠구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면"
  "아니에요, 전 놀이터에서 놀 정도로 한가해요"
  "그렇게 지내다보면 어른이 되었을 땐 너의 꿈은 사라지고 없어지지 않을까?"
  "사실 제 꿈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네를 타며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거에요"
  "다만 어른들은 그네를 타면서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지만요"
문득 그는 그네타기를 좋아했던 자신이 떠올랐어요.
  "그건 아마 어른들은 그네 같은 것에 시시함을 느끼기 때문일거란다"
  "그렇지만 옆집 아저씨들은 이젠 저도 안가지고 노는 자동차를 사고는 무척 좋아하시던데요? 부릉부릉 소리를 내시면서"
  "키가 크는 것처럼 어른이 되면 좀 더 큰 장난감에 관심을 갖게 되지. 너희들이 지금은 무서워하는 바이킹도 나중에는 즐겁게 타게 될거야"
  "어른들을 만족시키려면 좀 더 큰 꿈을 생각해봐야겠어요. 여럿이 탈 수 있고 아파트 사이에 매달려 있는 그네 같은거면 분명 어른들도 좋아할거에요"
  "그런데 아저씨의 꿈은 뭐에요? 나보다 더 큰 장난감을 좋아하니 꿈도 나보다 훨씬 큰 꿈을 가지고 있을거 같아요"
그에게 꿈이라는 항목은 희망 직업을 적어 넣는 네모였다. 그리고 그 네모는 새까맣게 칠해진지 오래였다.
  "우리나라의 평화"
  "내 꿈은 세계평화인데 아저씨 꿈은 나보다 훨씬 작네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커진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어른들은 꿈도 희망도 욕심도 아이들보다 훨씬 크지"
  "그렇지만 아저씨 꿈은 제 꿈보다 작은데요?"
  "네가 어른이 되면 왜 더 큰 꿈인지 이해할 수 있을거야"
  "아저씨도 결국은 다른 어른들처럼 말하시네요, 크면 알게 될거라고"
  "나에게도 너처럼 그네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듯이 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어야 할거야. 너는 점점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될테고 꿈도 그와 함께 커져가겠지만, 목표에 도달했을 땐 왜 그 꿈을 쫒았냐는 궁금증만 남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처음 그 꿈을 떠올린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면 안되, 부풀어오르다 결국엔 터져버리는 풍선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의 소중한 별로 만들고 싶다면"

아이는 그네에서 내려 타고 있던 그것을 힘껏 밀어던졌다.
어느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높이 올라간 그네는 그대로 돌아 그네가 매달린 기둥에 한번 감켰다.
이제 그네는 어른이 타도 발이 땅에 닫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높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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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생각하기 2008. 12. 31. 01:22

   날씨는 지금도 차다. 새해에 대한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TV 퀴즈쇼에 나온 어느 사람처럼 모두들 내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마음 속이 뜨거워진다. 좀 전부터 안보이기 시작한 해는 어느 덧 어둠에게 대부분의 자리를 건내준 것 같았다. 비록 2008년 마지막에도 어김없이 빛나는 검은 상자들 덕분에 그 느낌은 덜할지라도.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점점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가득한 이곳에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생방송이 코 앞으로 다가온 행사준비요원들은 실수라도 할까봐 바쁘게 이곳저곳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무리들, 신년을 맞이하는 사람들 답지 않게 무거운 표정을 한 이들은 마지막날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무대 위에 어떤 사람이 올라와 생방송의 시작을 알려왔다. 곧이어 환하게 빛나는 무대에 사회자들이 들어왔고 어둡던 객석 한쪽에서는 작은 불빛 하나가 올라왔다. 방송의 시작을 다 같이 환호하기라도 한듯 객석 곳곳에서는 하나둘식 작은 불빛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부분부분 전혀 없는 부분도 있었고 무대 위 조명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불빛이었기에 어두움을 덥을 순 없었지만 그 숫자만큼은 엄청났다. 내가 방송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맨이었다면 몇명의 사람들만이 홀로 서있는 무대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이 광경을 찍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마음을 다잡고 진행을 하려던 사회자도 지금은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 처음엔 자신의 그들이 낸 빛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국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위치라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황은 기묘하게 진행되었다. 하나처럼 보였던 사람들은 방향성이 없었고 방금 말한 것처럼 사회자도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마치 다같이 빨간양말을 걸어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같아 보였다. 모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 담긴 소망은 제각각인 것 같았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후에 상황은 너무나도 꿈만 같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잠자리에 일어나서도 한동안 머리 속에서 맴도는 생생한 꿈들처럼 한편으로 비현실적이여서 현실적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당신도 곧 나와 같은 꿈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테니.이곳으로 놀러온 사람들도,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어두워서가 아니라 어두움에도 불을 켤수 없을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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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생각하기 2008. 12. 27. 14:22
   지난 2년간 우리 학교는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 손외의 영역이었다. 그리하여 지풀라기 잡는 심정으로 우리의 마지막 시도는 국민들의 대대적인 관심을 끄는 일이었다.
   몇일 안되는 기간동안 밤새워 홍보동영상을 만들고 그걸 각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다 날랐다. 블로그가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는다는 글을 포스팅했다. 잠깐이나마 학교 이름을 포탈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2월의 피와 땀은 별다른 결실없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관심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모르는 학교에 관심을 쏟기를 거부했다. 결국, 2008년 12월 26일 현재, 선장도 없고 돗대도 없는 배가 행운의 여신을 따라 동토가 아닌 따뜻한 남도에 도착하기를 기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도움을 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차례가 되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도 2년전 그렇게 원망하던 관심없고 자기일 하기 바쁜 한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무에 열린 과실을 먹으면서도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버린 사람들. 나무가 어떻게 되던 열매는 계속 열려있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 20년전 우리가 나무를 처음 심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나무는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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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없다

생각하기 2008. 11. 17. 11:14
   2008년 11월 14일은 심각하게 우울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 아고라에서 글을 올리던 미네르바는 국가의 압력을 받고는 마지막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던 술집에서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편을 소리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명박보다 강만수보다 추락하는 경제를 잘 예측하던 미네르바에게 내린 국가의 행동은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초등학생들에게 용돈 주듯, 주가 3000, 5000을 난발하던 대통령과 경제 위기는 없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다면서 미국과 통화 Swap를 맺고는 기뻐 날뛰던 재경부장관 그리고 덧샘 밖에는 모르는 일명 경제전문가인 애널리스트들이 있다.

   나쁜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분명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고 우리나라 경제지표에도 위기라는 증조가 이곳저곳 보이는 데도 그들은 절대 부정적인 전망을 내리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의사였다면 분명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보고도 "불로장생하실 겁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차라리 다가올 크리스마스날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빨간 양말에 파란 약을 넣어주실거라는 말이 더욱 현실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주의를 옹호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통제와 감시 뿐이다. 최진실법이라는 가칭하에 어이없이 진행되는 3대 사이버법(사이버 모욕제·인터넷실명제·인터넷감청)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1940년대 독일 혹은 1950년대의 구 소련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국민들의 입을 막고 나라가 모든 것을 통제하면 망한다는 사실, 이건 바로 앞에 두 나라에서 얻은 역사적 교훈 아닌가.


   자식들의 교육 환경을 위해 조기 유학을 보낸다는 사람들을 보면 비웃음을 보냈다. 비록 외국의 교육환경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자식교육의 50%이상은 부모들을 통해 받는 영향에서 나온다. 그런 50%를 버리고는 나머지 50%를 더 좋게 하겠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식의 교육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한국을 떠나겠다는 사람을 본다면 박수 쳐줄것이다. 이곳에는 희망의 목소리가 없다. 입을 막아버린 이곳에서 희망의 목소리도, 절망의 목소리도 제대로 나올 수 없다. 이야기가 없기에 현 상황을 이해 할 수도 없다. 이곳이 과연 유토피아가 되어가는지 아니면 목을 옥죄는 게토가 되어가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단지 기쁜 일이 많을 땐, 말을 줄이지 않는다는 경험으로부터 추측할 뿐이다.

   지금 생각나는 방안은 두가지다. 하나는 용기를 잃지 않고 힘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희망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일단 후자는 차선이다. 정신줄 놓은 정부와 정당들 사이에는 투표권 마져 사실상 4년간 빼았겨 버린 내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되어 가는게 눈에 확연히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나. (지금 생각한 한가지 방안이라면, 전국적인 일인 시위들을 통해 정보 왜곡&통제부터 알리는 방법인데, 문제는 사람들로 큰 반향을 얻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있을지.)


   작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대부분 국민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돈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될거라고 꿈꾸는 것처럼 사람들도 경제 대통령이 돈을 많이 벌게 해주면 행복해 질거라는 막연한 꿈을 꾸었었다. 그리고 그 꿈이 깨지는 순간, 큰 절망감과 혼란이 찾아 올 것이다.

   장래희망에 '돈'이라고 적는 아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항목에 '돈'이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대통령과 같이 가능성이 희박한 꿈이 아닌 불가능하고 말도 안되는 희망을 집어 넣은 것이다. 그 희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희망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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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생각하기 2008. 10. 17. 18:51

내가 보는 세상이 칠흑처럼 어둡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그런 세상에서 눈에 띄일 정도로 빛을 내주는 분들이 있기에,
그 빛을 따라 걸으며 힘을 얻는다.

내 중심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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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그리고 목 졸린 대한민국

생각하기 2008. 10. 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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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비보에 전 국민이 도탄에 빠졌다.
고인의 죽음은 나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커다란 충격과 함께 몇가지 우려를 만들었다.
실제로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으로 몇몇 기사들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링크)를 걱정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과연 일련의 사건들이 전국민적인 자살이라는 베르테르 효과를 잃으킬까?

단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벌써 우리 사회는 전국민적인 자살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음 BBC 기사의 인용을 보자 (본문 링크)

<BBC>는 "한국정부, 자살문제 대한 조치를 시작하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자살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이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자살원인 뿐만 아니라, 자살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방법까지 계획하고 있다"면서 "농약과 독극물들에 대한 판매 통제도 한층 강화"되고, "자살을 독려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통제될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복리 지원이 향상될 전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높은 자살 비율에 대해 <BBC>는 "한국은 급격한 사회적인 변화와 경제적 양극화에 의해 자살율이 급증"했다고 정부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부가 한국 사회가 병과 가난, 고령화 시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의 이따른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단순히 악플에 의해서 죽었다고 한다면 한해에 자살하는 14000여명의 국민들도 모두 악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봐야 옳다. IMF이후 자살율이 꾸준히 늘어 결국 OECD 1위 목록에 '자살'이라는 항목을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름대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쓴다는 신문에서는 '우울증'을 그 문제의 원인으로 보았다.
"아 그렇구나 우울증이 문제구나, 우울증을 줄이면 되겠군"

딱 여기까지다.
우울증을 줄여야 하는건 알겠는데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
기껏해야 햇빛을 많이 쬐라는 건데 자외선이 무서워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나간다고.
이전에 비해 햇빛이 줄은 것도 아니라면(오히려 늘었겠지) 무언가 원인 있을텐데,
이야기의 전개는 '우울증을 줄이자'가 끝이다.

알면서 이야기 안하는지 정말 모르는지.
아, 그런데 왜 증권사 여자의 루머가 악플문제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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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인 법치국가

생각하기 2008. 7. 16. 15:39

   우리나라는 법이라는 공통의 기준을 가지고 운영되는 법치국가이다. 법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때 그 법의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법이 어느 개인 또는 단체에 차별적인 적용을 실행하는 순간, 법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헌법이 제정된지 벌써 60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법은 만인 앞에서 평등하지 못했다. 우리의 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엄격했지만, 부자이고 힘있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했다. 쿠데타를 잃으키고 시민들을 학살한 살인자들은 군인이었기에 군법에 따라야 처벌을 해야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나마 받은 무기징역도 얼마 지나지 않아 특사라는 이름으로 행방됐다. 요즘 그는 정치계의 대부마냥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후배 정치인들 접견 소식으로 아직까지도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헌법 제정 60주년을 하루 앞에 둔 오늘, 법원은 또 한번의 과오를 저질렀다. 우리의 법은 사람 앞에서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며칠 전 폭력 촛불시위로 검찰로부터 1년 6개월이 구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직 법원의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차벽용 경찰 버스 위에서 방어판을 떼어내 훼손돈 혐의가 징역 1년 6개월감이라고 법원은 판단했다. 그리고 오늘 법원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몇 천억원의 세금 포탈혐의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집행유예가 있기에 사실상 징역 3년은 징역을 살지 않는 처벌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징역 7년과 8천억원을 구형했었다.
   이것이 우리 법의 잣대이다. 우리가 검찰로부터 징역 7년을 받는다면 과연 그 사건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차벽의 방어판을 때어내서 1년 6개월을 받았던 저 사람도 아마 판결에서 징역기간이 줄으면 줄었지 집행유예판결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법은 수천억원의 탈세는 집행유예라는 판결을 내렸고, 많아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일 차벽의 회손에는 엄격하지 못해 무서운 판결을 내릴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과 무분별한 기업확장으로 맞은 IMF를 이겨낸 원동력도, 금을 모으고 기업에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의 힘이었다. 그렇게 그 위기를 이겨낸 것은 우리인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수많은 공적자금을 먹은 기업들은 또 한번의 경제위기를 운운하며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고는 법 앞에서의 평등, 더 나아가 자신들이 경제의 핵임을 주장하고 있다. 불법 탈세와 수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휠체어 하나면 법을 무시할 수 있는 경제의 핵임을.
   역사는 미래의 지침이 된다. 우리는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좋은 일과 나쁜 일, 앞으로 해야할일, 하지 말하야 할일을 구분하게 된다. 아쉽게도 우리 법의 역사는 좋은 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 그리고 나쁜 일과 앞으로 해야 할일을 나누어 놓아버렸다. 세금을 제대로 내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높은 위치에 있고 재산이 많을 수록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된다. 반대로 탈세를 하고 위법을 저지르는 일은 나쁜 일이지만, 앞으로 해야 할일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계몽된 우리는 기업들이 탈세를 하는 일이 합리적인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수 천억원 세금 포탈해도 징역도 없고 벌금도 1천 100억원밖에 안되니, 안걸려도 이득 걸려도 이득인 자명한 행동이 된 것이다.

   너무나도 합리적이어서 법조차도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돈으로 사랑도 살 수 있고 우정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역겨워하지 않는 이상한 국민들. 내 얼마되지 않는 통장의 잔고를 모아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양심은 얼마면 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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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가려는 시위대 왜 말리지 않는가?

생각하기 2008. 6. 8. 15:28

촛불만 들었던 시위대가 거리로 나간것까지 좋았습니다.
비록 거리로 나가서 강제연행되고 몇몇 전경들에게 방패와 군화발로 구타를 당하긴 했지만,
우리에게는 비폭력이라는 양심이 있었습니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평화롭게 하는 시위를 '시위'라고 부릅니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서로 싸우는 시위를 우리는 '폭력시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전경들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해산 하려하지만 시위대는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시위를 '비폭력 시위'라고 부릅니다.

'비폭력 시위', 이것이 우리를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20일가까이하던 청계천 촛불 문화제에서, 20만명이 넘는 사람이 올정도로 크게된 이유는 비폭력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한명씩 연행할때마다 촛불을 든 시민는 10명씩 늘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할때마다, 촛불을 든 시민은 백명, 천명씩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을 희생시키며, 우리의 비폭력이라는 대의를 지키며, 우리의 힘을 키웠습니다.

우리를 만들고 뭉치게 한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잊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2144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68신 참조)
오마이뉴스에 그런 사진들이 실렸다면 더 이상 일부 시민들이 폭력를 사용한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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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두 눈으로도 확인했고요.

많이 아쉽고 슬픕니다.
전경차를 끌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경차의 유리를 부시고 불 태우려는 사람들에게,
전경들에게 폭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비폭력"을 외치며 말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청와대로 가는 것이 우리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하는데 더 도움이 될까요?
많은 전경버스를 끌어내리고, 시민들과 전경들 서로 싸우고 다투면서 청와대로 한보 더 나아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가 청와대로 한보 더 나아가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 귀에 우리 말이 더 잘 들어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2002년 월드컵 준결승 때, 시청과 광화문 일대가 아닌 상암경기장 옆에서 응원을 했다면 결승에 올라갔을 것이라도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응원했던 그 곳에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독일에게 패한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드물거라 믿습니다.
선수들은 전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장소가 어디였든 우리의 응원은 제대로 전달되기 충분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전진이 없고 정부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책을 내놓지 않기에 느끼는 답답함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보 전진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올때까지 기달려주는 인내심일 것입니다.
또한 이 시간을 우리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매일 많은 시민들이 마이크를 잡고 자유연설을 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자유연설에서 한층 더 나아가 시민토론, 즉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합니다.
촛불을 들고 이 사태의 해결이라는 한가지 목표로 거리에 나왔지만, 개개인 마다 목표의 범위가 각자 다릅니다.
어떤 분은 광우병문제만 해결되면 촛불시위를 그만하겠다는 분도 계실테고,
어떤 분은 이명박 정권의 모든 정책들이 맘에 안들어 그 정책들을 모두 포기할 때까지 있으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 두손 두발 들고 재협상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과 같이, 시민들 사이에서 충분한 토론과 하나의 확실한 목표선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광우병만 해결되면 된다는 분들은 집으로 귀가하실테고, 거리에 남아서 계속 시위를 하는 분들은 전경들에게 모두 연행될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달려가고 미래입니다.
광우병 해결,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의 연행말입니다.


우리는 광우병 위험이라는 전 국민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비폭력이라는 대 원칙아래, 무기가 아닌 촛불을 들고 국민들이 모였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폭력을 당하고 살수차에 의해 촛불이 하나둘씩 꺼졌지만,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꺼지는 촛불의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촛불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렇게 쉬쉬하던 언론들도 더 이상 국민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살수차를 뿌리고 강제진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힘이 커진 것입니다.

우리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우리를 만든 촛불을 스스로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경차를 끌어내리기 위해 들고 있던 촛불을 놓고,
전경차의 유리를 깨기 위해 들고 있던 촛불을 놓고 있습니다.

끌어내려진 전경차의 모습으로는, 깨져버린 유리창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초불을 늘릴 수 없습니다.
왜 우리의 힘을 스스로 버리려고 하십니까?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부모들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하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모든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만약 자신의 옆에서 촛불을 놓고 "폭력"을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비폭력"을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비폭력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촛불은 남을 태우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태우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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